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SPECIAL REPORT] 가상현실 상용화 시대 성큼, '콘텐츠'가 성공의 열쇠다



지난 1993년 개봉돼 큰 인기를 얻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 ‘데몰리션 맨(Demolition Man)’은 범죄가 사라진 서기 2032년 미래 사회의 모습을 다뤘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냉동 감옥에 수감된 경찰 스파르탄(실베스터 스탤론 분)은 함께 냉동됐던 극악무도한 범죄자 LA피닉스(웨슬리 스나입스 분)가 탈출하자 그를 잡기 위한 목적으로 풀려난다. 영화는 경찰 스파르탄이 너무나도 달라진 미래 사회 속에서 더욱 강력해진 LA피닉스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데몰리션 맨에는 화려한 액션과 범죄 소탕이라는 줄거리와 함께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이 있었다. 미래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스파르탄은 여경 레니나(산드라 블록 분)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레니나는 어느 순간 스파르탄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섹스할까요?”


레니나와 함께 집으로 간 스파르탄은 자연스럽게 옷을 벗는다. 하지만 레니나는 옷을 벗는 대신 얼굴에 착용할 수 있는 낯선 기계를 스파르탄에게 건넨다. 얼떨결에 기계를 쓴 스파르탄은 눈앞에 펼쳐지는 관능적인 레니나의 모습을 보며 2032년의 ‘가상 섹스’를 즐기게 된다.

영화 속 섹스 장면은 가상현실을 통해 표현됐다. 사실 가상현실은 다양한 공상과학 영화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하지만 섹스라는 다소 야릇한 콘텐츠는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특히 가상현실이라는 기술의 본질에 대한 관심을 넘어 이를 통해 활용 가능한 콘텐츠의 사례를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으로 기억에 남았다.

영화 속 배경인 2032년까지는 아직 16년이 남아 있다. 분명한 사실은 가상현실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좀 더 빠른 시일 내에 영화 속 ‘그것’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미 가상현실 시장은 글로벌 IT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애플 등 IT 강자들이 가상현실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도 가상현실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이미 다양한 디바이스를 출시했다. 문제는 콘텐츠다. 가상현실이 널리 상용화되려면 결국 사용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필수라는 것이다. 포춘코리아가 가상현실 콘텐츠 시장의 현황과 성장 가능성을 분석해봤다.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 기업 무버(Mooovr)의 직원이 VR기기를 착용하고 360도 동영상을 즐기고 있다.가상현실 콘텐츠 제작 기업 무버(Mooovr)의 직원이 VR기기를 착용하고 360도 동영상을 즐기고 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It’s the economy, stupid!)”


지난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가 내세웠던 캐치프레이즈다. 당시 클린턴 후보는 간결하고 명확한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걸프전 승리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조지 부시 시니어(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대선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문제는 000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지난 4 · 11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더불어민주당의 캐치프레이즈 역시 ‘문제는 경제다. 정답은 투표다’였다.

VR 시장을 논하기 전에 이 같은 정치적 사례를 언급한 것이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캐치프레이즈를 조금만 패러디하면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가상현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현대원 한국VR산업협회장은 말한다. “VR이 영화, 게임 등 특정 분야에 치우친다면 크게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기존 산업과 어우러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의료, 국방, 관광,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업종 간 융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 선보인 대다수 VR 콘텐츠는 여전히 게임, 영화에 집중돼 있죠. 문제는 콘텐츠입니다.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결코 VR 시장을 선도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현 회장의 말처럼 VR 콘텐츠 시장 선점은 곧 VR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대다수 전문가들 역시 VR 기술이 탑재된 디바이스의 상용화가 본격화하는 시점에선 콘텐츠의 확보가 곧 시장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삼성전자 갤럭시S6와 결합해 가상현실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헤드셋 기기 ‘삼성 기어 VR’.삼성전자 갤럭시S6와 결합해 가상현실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헤드셋 기기 ‘삼성 기어 VR’.


VR 상용화 발목 잡은 기술적 한계
사실 VR 기술은 오래전부터 주목받아 왔다. 이를 활용한 디바이스 역시 꾸준히 개발됐고, 일부 제품은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에서야 VR 콘텐츠의 중요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VR이라는 기술의 발전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극은 현실이다. 하지만 시각적 효과를 통해 관객을 현실과 같은 상황에 몰입시키는 것일 뿐, 결코 진짜 현실은 아니다. 일종의 가상현실(La Realite Viturelle)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출신 작가 겸 영화감독인 앙토냉 아르토는 1938년 출간된 저서 ‘잔혹연극론’을 통해 처음으로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후 컴퓨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컴퓨터로 창조한 새로운 세계를 ‘가상현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탄생한 최초의 기기는 지난 1968년 미국 유타대학교의 이반 서덜랜드(Ivan Edward Sutherland) 박사에 의해 개발된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 · HMD)’다. 엄청난 크기와 천장에 부착해 사용하는 방식 때문에 ‘다모클레스의 검(The Sword of Damocles)’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이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온 VR 기술이 처음 상용화된 분야는 다름 아닌 ‘게임’이었다. 지난 1995년 일본 게임기 회사 닌텐도는 자체 개발한 VR 게임기 ‘버추얼 보이’를 통해 최초로 VR 디바이스 상용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버추얼 보이는 시장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품질 문제였다.




올해 초 열린 MWC2016에서 LG전자 부스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VR기기를 체험하고 있다.올해 초 열린 MWC2016에서 LG전자 부스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VR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사실 버추얼 보이에서 선보인 게임 콘텐츠는 나름대로 괜찮았다. 배경음악과 타격음은 실제와 꽤 유사했고,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래픽은 당시만 해도 파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디바이스는 콘텐츠의 품질을 100% 뒷받침하지 못했다. 실제로 당시 VR 전용으로 출시된 게임 콘텐츠를 이용한 사용자 중 상당수가 구토와 멀미, 어지러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이 같은 현상은 아직까지 가상현실 기술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처럼 기술적 한계에 직면한 게임업계에서는 가정용 VR 게임기의 생산을 중단하고 오락실용 게임에 VR 기술을 일부 적용하며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렇다면 과연 기술적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VR 디바이스 개발업체인 고글텍의 스티브 최 대표는 말한다. “문제는 비용이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적정 가격에 맞춰 제품을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특히 핵심 부품인 LED 디스플레이의 가격은 지금보다 10배 이상 높았습니다. 기본적으로 LED 가격이 비쌌을뿐더러, 이를 소형화해 공급하려면 막대한 공정비용도 발생했죠. 결국 당시 게임업체들은 가격과 품질, 두 가지 고려대상 중 가격을 선택하게 됩니다. 물론 품질을 선택했다고 해도 현재 출시된 제품 수준에 도달하기는 어려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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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기술적 한계는 VR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VR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주요 글로벌 IT 기업들이 앞다퉈 한 단계 진일보한 디바이스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있다.

전문가들은 가상현실 콘텐츠 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킬러 콘텐츠’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VR기기를 착용한 두 명의 남성이 콘텐츠를 즐기고 있는 모습.전문가들은 가상현실 콘텐츠 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킬러 콘텐츠’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VR기기를 착용한 두 명의 남성이 콘텐츠를 즐기고 있는 모습.


가상현실 디바이스 시장 선점한 국내 기업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VR 디바이스를 출시하며 주도권 선점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광학식 VR 디바이스 ‘기어VR’은 스마트폰에 장착해 사용하는 헤드셋 모양의 기기다. 사용자들은 스마트폰에서 VR 전용으로 재생되는 영상을 기어VR에 장착된 렌즈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반면 LG전자가 내놓은 ‘LG 360 VR’은 안경 형태의 디바이스다. 960×720 해상도의 1.88인치 IPS 디스플레이를 VR 기기에 내장, LG G5와 유선 방식으로 연결해 영상정보를 이용자에게 전달한다. 두 회사의 제품은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6’에서 공개돼 전 세계 소비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기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부스는 밀려드는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양사가 VR 생태계 구축을 위해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과 동맹을 맺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페이스북을, LG전자는 구글을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했다.

삼성전자는 일찌감치 PC 부문 VR 기술의 선두주자인 오큘러스와 손잡았다. 기어VR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각종 VR용 콘텐츠는 대부분 오큘러스의 콘텐츠 스토어를 기반으로 유통된다. 특히 오큘러스가 지난 2014년 페이스북에 인수되면서 삼성전자의 VR 시장 대응 전략은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 2월 MWC 2016에서 열린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7’ 언팩 행사에 깜짝 등장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삼성전자는 글로벌 1위 모바일 하드웨어 기업”이라며 “삼성전자의 하드웨어와 페이스북의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막강한 VR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LG전자 역시 구글과의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월 LG전자의 360도 VR 영상 카메라 ‘LG360캠’은 구글이 서비스하는 ‘스트리트뷰’의 호환제품으로 공식 인증을 받았다. 이를 통해 LG360캠으로 촬영한 영상은 별도의 변환 과정 없이 구글 스트리트뷰 앱에 바로 업로드할 수 있다. 현재 구글 스트리트뷰 호환 인증을 받은 360도 VR 영상 카메라는 총 3종으로, 이 중 휴대폰 제조사가 만든 제품은 LG360캠이 처음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이 같은 행보가 국내 VR 산업, 특히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VR 콘텐츠 개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VR 디바이스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콘텐츠 확보를 위한 투자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VR 애플리케이션 개발 기업인 볼레크리에이티브의 서동일 대표는 말한다. “아무리 VR 디바이스가 좋다고 해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없다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양사가 막대한 자금력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콘텐츠 개발에 나설 수도 있죠. 하지만 이미 국내에는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수많은 VR 콘텐츠 제작 기업이 존재합니다. 이들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면, 적어도 글로벌 VR 생태계의 중심에 대한민국 기업이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오큘러스의 VR기기를 착용한 한 남성이 가상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하고 있다.미국 오큘러스의 VR기기를 착용한 한 남성이 가상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하고 있다.



VR 콘텐츠가 전체 VR 시장 성장의 견인차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향후 5년간 글로벌 VR 하드웨어 시장은 2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 점은 바로 VR 콘텐츠 시장의 성장세다. 가트너는 VR 콘텐츠 시장이 하드웨어 시장의 2배 이상인 500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달리 말하면 VR 콘텐츠 시장이 전체 VR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가장 큰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VR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는 콘텐츠는 360도 동영상(사용자가 보고 싶은 방향이나 시점을 선택해 360도 회전하며 시청할 수 있는 동영상)이다. 360도 동영상은 가장 기본적인 VR 콘텐츠로 손꼽힌다. 일반 사용자들도 360도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 제품만 있으면 특별한 기술 없이도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페이스북과 유튜브가 360도 동영상 게재 기능을 추가한 이후 일반인들이 제작한 콘텐츠가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다.

국내 인터넷 및 통신 · 미디어 업체들 역시 360도 동영상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지난 2월 네이버tv 캐스트에서 ‘360 VR 영상 서비스’의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뮤직비디오, 롤러코스터 체험, 익스트림 스포츠 등 다양한 장르의 영상 60여 편이 공급되고 있다. 특히 PC 기반 플랫폼에서만 감상이 가능했던 서비스 초기와 달리 현재는 모바일로도 감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

통신 3사도 앞다퉈 360도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KT는 지난 1월 말 올레tv 모바일에 ‘360 VR 전용관’을 개설했고 LG유플러스도 최근 LTE 비디오 포털을 통해 360도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했다. 특히 KT는 아바엔터테인먼트와 공동으로 단편영화와 리얼리티쇼를 360도 VR 동영상으로 제작 중이며, LG유플러스는 VR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인 무버와 함께 인기 TV 예능프로그램을 360도 동영상 형태로 변환 · 제공 중이다.

360도 동영상 시장 못지않게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분야는 바로 게임업계다. 특히 중소형 게임사들은 VR 콘텐츠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시장 선점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은 한빛소프트다. 지난해 VR 콘텐츠 전문 개발기업 스코넥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하며 VR 분야 진출을 선언한 한빛소프트는 모바일게임 개발인력 상당수를 VR 개발 조직에 투입하며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밖에 조이시티, 엠게임, 드래곤플라이 등 중소 게임사들도 아케이드, 슈팅, 보드게임 등 다양한 장르에서 VR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기회의 문은 열렸다. 하지만 대다수 콘텐츠 개발 기업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내 VR 콘텐츠 시장의 전반적인 경쟁력은 여전히 하드웨어 부문의 경쟁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킬러 콘텐츠’의 부재가 결정적인 이유라고 말한다. 정부연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말한다. “한때 3D TV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열풍이 얼마 못 가 차갑게 식었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콘텐츠의 부재였습니다. 3D TV로 볼 수 있는 콘텐츠가 꾸준히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거든요. 상용화에는 성공했지만, 대중화에는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3D TV 시장입니다. 이제 막 태동하는 VR 시장이 3D TV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VR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니까요. 무엇보다 콘텐츠의 발달은 결국 하드웨어의 성능 향상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더욱 많은 콘텐츠가 제작 · 유통되고 이를 통해 사용자가 증가하면 자연스레 디바이스도 이에 맞춰 발전할 수 있다는 거죠.”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 기업 무버의 프로그래머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가상현실 콘텐츠 제작 기업 무버의 프로그래머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VR 콘텐츠 유통 시장부터 조성해야

VR 콘텐츠를 개발하는 기업들 역시 할 말이 많다. 기본적인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은 리스크를 스스로 떠안는 꼴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VR 콘텐츠 기업 대표 A씨는 말한다. “아이디어는 충분해요. 당장 개발하라고 하면 한 달 내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낼 수도 있죠. 아마 대다수 기업들도 저희와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수익입니다. 유통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저희가 어떤 경로로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을까요? 또 한 가지 문제는 사실상 VR 생태계를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할 국내 대기업들이 정작 국내 콘텐츠 개발 기업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해외 기업에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면서 왜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은 쳐다보지 않는 걸까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상관없지만 그럴 수 없는 저희 같은 중소기업은 미래가 깜깜하기만 합니다.”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VR 콘텐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선 역시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VR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VR 기술 개발 스타트업 대표 B씨는 말한다. “최근 애플이 VR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준비에 돌입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과연 애플은 어떤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할까요? 아마 기존 플랫폼에서 그러했듯, 콘텐츠와 앱과 같은 VR 관련 생태계를 우선 조성한 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국내 대기업들은 선제적으로 디바이스를 출시해 시장 선점에는 일단 성공했죠. 하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치고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죠. 만약 애플의 행보처럼 역량 있는 국내 콘텐츠 기업과 연합해 하나의 생태계를 조성한 뒤에 디바이스를 선보였다면 상황은 아마 달라졌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충분합니다. 디바이스 중심의 대기업과 역량 있는 콘텐츠 기업이 결합해 생태계를 하루빨리 조성해야 합니다. 아마 이 같은 바람이 이뤄진다면 VR 시장에서 진정한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김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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