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불붙는 개헌론 7공화국 서막인가] 내각제, 소선거구제 개편 없이 도입땐 포퓰리즘 기승 불 보듯

<중> 내각제의 명암

'승자독식 선거제' 유지하면 지역정당 매몰 등 부작용 뻔해

선진국은 중·대선거구제 결합해 의회·내각 책임정치 구현

개헌파 의원 66% "선거구제 개편 병행해야" 설득력 얻어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권력구조 개헌의 조건’을 주제로 열린 제10회 대안담론포럼 세미나에서 김종인(오른쪽 세 번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오른쪽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 /연합뉴스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권력구조 개헌의 조건’을 주제로 열린 제10회 대안담론포럼 세미나에서 김종인(오른쪽 세 번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오른쪽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 /연합뉴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불붙은 가운데 권력구조와 관련한 시나리오로 △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세 가지가 거론된다. 이 가운데 현행 대통령 중심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중임제를 제외하면 순수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는 모두 내각제의 요소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문제는 의회권한을 강화해 행정부까지 장악하는 내각제가 현행 소(小)선거구제와 결합할 경우 가뜩이나 국내 현실정치에서 심심찮게 드러나는 포퓰리즘적 양상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경제·정치 전문가들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내각제 도입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아울러 개헌에 찬성하는 현역 의원의 3분의2가량은 개헌과 함께 선거구제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골목정치’ 소선거구제하에서는 내각제 장점 살리기 힘들어=물론 상당수의 해외 선진국들이 정치 제도로 채택하고 있는 내각제에는 분명한 장점이 존재한다. 의회 다수당의 대표가 행정부 수반(총리)을 맡기 때문에 의회와 내각이 협치를 통해 국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의회가 행정부에 대해 끊임없이 견제·감시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대통령제에 비해 책임정치를 구현하기가 훨씬 수월한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장점을 가진 내각제가 소선거구제의 개편 없이 국내 정치에 도입되면 만만치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1987년 이후 3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소선거구제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한 명의 후보만을 의원으로 선출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선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일부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표(死票)가 무더기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지역주의 정당체제를 고착화하는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 게임 속에서 지역주민이 원하는 사업이라면 이유 불문하고 밀어붙이는 습관이 몸에 배다 보니 국가와 국민이 아닌 지역 대표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소선거구제하에 움직이는 한국 국회의원은 시·도의원과 다를 바가 없다”며 “지역 문제에만 매몰돼 거시적인 국가 정책에 대해 합리적인 고민을 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 교수는 “선거구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내각제가 도입되면 의원들끼리 ‘지역구 돌려먹기’를 하면서 국가의 재정 부담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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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내각제를 시행 중인 해외 선진국들은 대부분 중대선거구제(한 지역구에서 2명 이상의 대표를 선출)와 비례대표를 결합한 형태의 선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골목정치가 판치는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두면 내각제의 장점이 구현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선거구제 개편 병행해야” 설득력=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곧바로 내각제로 이동하는 것은 상당히 이르다. 우선 이원집정부제로 가는 게 맞다”는 소신을 밝히는 것도 이 같은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문제는 이원집정부제 역시 국가의 대표자(대통령)를 직접 선출하고 싶어 하는 시민의 욕구를 일부 반영한 것일 뿐 실제 권한은 총리에 집중되는 내각제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개헌과 함께 선거구제의 개편도 맞물려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연합뉴스가 지난 19일 여야 300명의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헌 찬성파인 250명의 의원 가운데 164명(65.6%)이 현행 소선거구제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대 의견은 72명(28.8%), 유보 등 기타 의견을 낸 의원은 14명(5.6%)에 불과했다. 선거구제 개편은 헌법 개정이 아닌 공직선거법 개정만으로 가능하다.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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