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한·쿠바 수교를 위하여

임종건 언론인

전 서울경제신문 부회장

尹외교 방문, 수교 물꼬 텄지만

쿠바는 여전히 北 맹방 중 하나

민·관 우호 증진 노력과 더불어

북핵 해결 지렛대로 활용해야

전 서울경제신문 부회장전 서울경제신문 부회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4일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는 최초로 쿠바를 방문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회담을 했다. 윤 장관은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장에서 자신의 쿠바 방문에 대해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미국의 달 착륙 아폴로우주선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의 말을 인용했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미수교국 방문이라는 ‘막차 중의 막차’를 타는 입장을 설명하는 말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쿠바가 지난 1959년 이후 단독 수교한 북한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고 여겨지기는 하나 윤 장관의 쿠바 방문 소식을 쿠바 언론에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쿠바 관계는 남북한 관계와 한미, 미·쿠바 관계와 밀접히 연계돼 있다. 북한 김일성이 살아 있었을 때 우리의 대쿠바 외교는 발붙일 틈이 없었다. 공산혁명 1세대인 김일성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90)는 형제적인 관계였다.

피그만 사건이 일어난 1960년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체 게바라는 평양을 방문해 ‘북한은 쿠바가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 찬양했다. 비동맹운동의 주역으로 김일성과 마주한 카스트로는 김일성을 ‘조용하고 친절한 분’이라며 존경했다.

1986년 카스트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평양을 찾아 김일성과의 친교를 더욱 두텁게 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쿠바에 대한 경제·군사 지원을 끊었을 때 김일성은 소총 10만자루를 무상으로 제공해 카스트로에게 보답했다. 최근에도 두 나라 간의 무기 교류 정황이 쿠바에서 출항한 북한 선박에 대한 검문 검색에서 드러나고 있다.

한국도 북한 편향이 노골적인 쿠바를 적대시할 수밖에 없었다. 쿠바에 대한 경제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지면 한국은 미국 편을 들어 반대 또는 기권했고 쿠바는 유엔의 대북한 제재 결의안에 반대로 응수했다. 한국이 쿠바 경제 봉쇄 해제에 찬성으로 바뀐 것은 1999년부터였다.


1994년 김일성의 사망으로 북한과 쿠바의 관계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권력이 아들 김정일, 손자 김정은으로 세습되는 모습을 카스트로는 공산주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으로 봤다. 북한의 후계자들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전쟁 위협을 하는 모습에는 “정신 나간 짓”이라고 했다. 그런 실망감의 표시로 그는 2003년 말레이시아 비동맹회의 참석 후 베트남과 일본을 다녀가면서 북한에는 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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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접어들며 한국 쿠바 간 교류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대사관계 수립 요구에 쿠바는 영사관계 수립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고 우리가 거부했다. 그 같은 중간 단계 없는 우리의 수교 전략이 미수교 상태를 지속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번 방문에서 윤 장관의 대사관계 제안에 쿠바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연내 개설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중남미 최대 외교 거점인 쿠바를 지키려는 북한의 방해공작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어 조기 수교는 낙관하기 어렵다.

2005년 대한무역진흥공사 아바나무역관이 문을 연 것은 그나마 통상 외교의 성과였다. 이 무렵 현대중공업이 쿠바에서 6억달러 규모의 발전소 설비공사를 수주해 수행했다. 미수교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공사를 한 현대중공업의 노력은 정부 외교 못지않게 민간 외교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2014년 미국과 쿠바가 단교 53년 만에 수교하고 올 3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쿠바 방문 후 윤 장관도 쿠바에 갔다. 미·쿠바 수교는 한·쿠바 관계에 탄력을 붙게 하는 것과 달리 북·쿠바 관계는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1962년 쿠바 사태를 해결하면서 체결한 미소 협정은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지 않고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거부로 중단된 6자회담도 유사한 방식의 해결책을 추진해왔다. 한미일이 북한 공격을 하지 않고 중·러가 이를 보증하는 조건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쿠바가 한국과 수교하면서 북한에 핵 포기를 권고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매우 아픈 충고가 될 것이다. 한·쿠바 수교는 교류 증진 외에 북핵 해결을 위해서도 유효한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신문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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