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머나먼 보스포루스



1973년 10월30일, 아시아와 유럽을 최단거리로 잇는 선이 생겼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완공된 것이다. 1,510미터에 폭 39미터. 요즘은 23번째 긴 다리로 밀려났지만 준공 당시에는 세계 네번째, 미국 외에서는 가장 긴 현수교였던 이 다리는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신화와 문명의 충돌 현장 아니던가.

보스포루스(Bosporus)라는 이름부터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다. 제우스가 아내 헤라에게 외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암소로 변신시켰던 ‘강의 딸’ 이오가 헤라의 보복을 피해 헤엄쳐 도망친 곳이기에 소를 뜻하는 그리스어 ‘bous’와 여울을 의미하는 ‘porus’가 합쳐져 지명으로 굳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보스포루스에 다리를 놓으려 애썼다. 최초의 시도는 기원전 4세기 무렵. 그리스 원정에 나선 70만 페르시아 군대가 배와 뗏목을 이어가며 거대한 부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동방 원정을 떠나는 알렉산더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하려는 오스만 튀르크의 군대 역시 배를 타고 이곳을 건넜다. 19세기 중반에는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가 이 해협을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렸다. 터키 공화국 수립 50주년을 맞아 건설된 보스포루스 현수교는 5,500여년 만에 다시 등장한 다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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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건설 계획을 1950년에 짰던 터키가 공사를 시작한 것은 1971년 2월. 공사비 2억 달러를 투입해 2년 8개월 만에 완공된 보스포루스 다리는 터키의 물류 활성화와 경제개발을 이끌었다. 1988년에는 제 2 보스포루스 다리까지 생겼다. 동로마제국이자 그리스 정교회의 본산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1543년)시킨 술탄 마흐메드의 이름을 딴 이 다리도 준공 당시에는 세계에서 5번째로 긴 현수교였으나 지금은 19위로 밀려났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둔 아시아와 유럽은 날로 가까워지고 있다. 제 3 보스포루스 다리가 완공 직전이다. 내년에는 자동차와 철도 2층 구조인 ‘유라시아 해저 터널’까지 뚫릴 예정이다. 제 3 보스포루스 다리나 유라시아 터널 공사에는 현대건설과 SK건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터키 방문시 눈으로 접했던 건설 현장 부근에서의 감회가 떠오른다. 한국 건설업체의 간판을 뿌듯하게 여기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씁쓸함이 밀려왔다.

보스포루스 2다리는 부산에서 출발하는 아시안 하이웨이의 종착점이자 유러피안 하이웨이의 출발점이건만 우리는 휴전선에 막혀 갈 수가 없다. 상대를 누르기 위한 폭력과 대결의 장소에서 소통과 교류의 요충지로, 대륙간 융합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보스포루스는 한국에게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끊어진 국토의 허리를 안고 탄식하나니, 머나 먼 보스포루스여./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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