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발행과 통화신용정책의 수립 및 집행, 금융시스템의 안정, 은행의 은행, 정부의 은행. 한국은행의 역할 중 일부분이다. 교과서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배우며 한국은행을 간접적으로 접한 적은 있지만, 일반 은행과 같이 예금 업무를 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한국은행은 일반인들에는 여전히 낯선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금리의 인상·인하·동결 결정을 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국은행 총재가 의사봉을 두드리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는 것 외에는 사실상 한국은행의 모습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심지어 현금보다 카드 사용이 늘어나면서 지폐나 동전에 한국은행이라고 적혀 있는 사실을 잊는 경우도 있다.
책을 통해서라도 한국은행을 이해하려고 해도 주로 한국은행의 기능과 정책을 소개하는 책들만 있을 뿐, 한국은행의 역사를 포함한 상세한 부분을 담은 책이 없어 그 또한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신간 ‘중앙은행 별곡’은 한국은행에 대한 지적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임에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은행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 30년 넘게 한국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 ‘한은맨’이 기술한 한국은행 역사서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저자는 이 책 한 하나로 한국은행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려는 과욕을 부리지는 않았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의 충고로 현대식 중앙은행 설립이 검토되기 시작한 대한제국 선포 시기인 1897년부터 강력한 정치적 중립성과 강력한 권한이 보장되는 중앙은행의 설립 요청에 따라 1950년 6월 새롭게 한국은행이 설립된 시기까지만 이야기한다.
이 시기는 혼돈의 시대였다. 한국 최초의 중앙발권은행인 구 한국은행이 1909년 11월에 설립된 이후 1911년 일본은 ‘조선은행법’을 제정·공포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같은 해 8월 조선은행으로 개칭돼 광복 때까지 전쟁과 외교의 도구로 동원됐다. 당시의 한국은행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 쉽지 않아 저자는 학술 논문, 전문서적, 신문기사, 회고담, 한국은행 선후배 사이에서 전수돼 온 일화나 경험담을 참고했다. 당사자인 선배들을 면담한 뒤, 이를 바탕으로 각종 기록과 상호 대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독자들은 책을 통해 한국은행이 조선은행일 때 많은 임직원들이 과로와 풍토병에 시달리며 순직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한국은행 전현직 직원들도 몰랐던 비화를 엿볼 수 있다. 한일 강제병합 직전 이토 히로부미 조선통감이 가쓰라 다로 일본 수상과 알력을 빚으며 세운 것이 대한제국의 중앙은행인 구(舊)한국은행이라는 사실, 이토가 가쓰라의 동양척식회사 설립계획에 반대해 중앙은행 설립을 주장했다는 사실이 그렇다.
한국은행 초대 총재인 구용서의 부친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구용서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구연수의 아들로, 아버지 때문에 신입 직원 중 유일한 조선인이자 무시험 합격생으로 조선은행에 들어갔다. 그러다 금융 전문가라는 이유로 한국은행 초대 총재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은행 사람들과 그들의 삶이 유장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한국은행은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이 책에 이어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까지 한국은행 역사를 담은 책을 낼 계획이 있음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행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지갑 안에 들어 있는 지폐처럼 가까운 기관이고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희로애락도 보통사람과 같다. 책을 통해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