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300억달러(약 35조원)를 반도체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향후 5년 동안 55조원을 들여 반도체 사업에 투자해 세계 3위의 반도체 업체가 되겠다며 마이크론·샌디스크 인수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자 자체 생산라인을 대폭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칭화유니는 중국에 메모리 공장 1개를 건설하고 필요한 인력을 적극 채용해 앞으로 메모리 시장에서 20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포부도 내놓았다.
# 쓰나가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은 5일 “반도체와 원자력 발전설비 사업을 중심으로 그룹 체제를 개편하겠다”고 선언했다. 도시바 측은 “오는 2017년 3차원(3D) 플래시메모리의 비율을 50%, 2018년에는 80%까지 늘리겠다”며 “수익성이 낮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등은 사업 철수를 검토하고 대신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DD)와 3D 낸드플래시메모리 등에 기존 사업 매각으로 들어온 투자금 등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적어도 메모리 시장에서만큼은 독보적 위치를 점해왔다. D램은 물론 휴대폰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메모리 시장에서 여타 업체들과 월등한 격차를 보이면서 점유율 수위를 달렸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D램 가격이 급락하면서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수익성은 떨어지고 매출마저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애플의 아이폰 판매가 주춤하면서 낸드플래시마저 판매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삼성전자는 올 1·4분기 기준으로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35.1%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지난해 4·4분기보다 오히려 1.5%포인트 올라갔다. 반면 하이닉스는 10.1%에서 7.9%로 내려앉았다.
이런 동안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는 중국과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일본의 기세는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수십조의 투자를 밝힌 칭화유니 외에도 중국 내 두 번째로 큰 디스플레이 업체인 차이나스타(CSOT)는 지난해 대량의 패널을 출하하며 글로벌 업계 순위 5위에 진입했다. 중국의 공세에 이어 일본 도시바까지 대규모 투자를 공언하면서 메모리 시장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한중일 3국의 투자경쟁은 새로운 ‘치킨게임’의 양상이 되고 있다.
◇중국 칭화 이어…반도체에 명운 건 도시바=도시바가 반도체 사업에 올인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 분야가 현재 손에 쥐고 있는 것 가운데 유일하게 수익성과 미래 성장 가능성 모두를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각된 회계부정 파문 이후 사회 인프라, 디바이스솔루션, 에너지, 인더스트리얼ICT솔루션 등 4개 컴퍼니 시스템으로 조직을 개편한 도시바는 캐시카우로 플래시메모리를 생산하는 디바이스솔루션을 우선 꼽고 있다. 중국 업체 등과의 경쟁이 치열한 D램 등과 달리 3D낸드는 삼성전자 외에는 다른 경쟁자가 없고 수익률이 25%(올해 상반기 기준)에 달할 정도로 높다는 점에서 도시바가 낙점한 차세대 성장동력인 셈이다.
◇도전받는 ‘반도체 한국’=일본과 중국 기업이 반도체 라인에 대한 막대한 설비투자에 나서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3년 업계 최초로 48단 V낸드메모리를 가장 먼저 양산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바 역시 올해 3월 48단 낸드플래시 샘플 생산에 나섰고 64단 연구개발을 이어가는 등 바짝 추격하는 모습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다른 업체에 비해 약 1년 이상의 격차를 두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후발주자들이 낸드 부문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함에 따라 선도기술을 계속해서 내놓아야 하는 압박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3D낸드메모리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SK하이닉스의 경우 사정은 더욱 나빠질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아직 48단 3D낸드 양산 및 본격 상용화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낸드메모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어지고 있다. 당장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애플의 아이폰7플러스에 낸드플래시 최대 용량이 256GB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제대로 된 생산능력 확보가 되지 않은 기업들은 격차를 줄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이 확대될 시장 수요에 대비해 단단히 벼르고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 기업의 투자가 시장 전체를 키우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D램과 달리 낸드메모리는 업체들이 나눠 가질 시장이 제한적이지 않다. D램은 스마트폰이나 TV 등 제한된 세트 안에서만 사용된다. 반면 낸드메모리는 별도의 세트 없이 자체적으로도 이용 가능해 한사람이 여러 장을 보유하고 있기도 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삼성전자 등이 보유한 기술력이 경쟁국을 앞서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 기업의 도전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기술개발 등을 꾸준히 진행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이수민·강도원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