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흔들리는 '경제검찰' 공정위] '보여주기 조사' 법원서 뒤집히기 일쑤…공정위 스스로 '번복' 늘어

전원회의 잇단 '무혐의 판정' 이유는

오라클·면세점 환율 이어 CD까지 판정 뒤집어

부족한 인원·예산에 '문어발식 조사'가 원인

"CD금리 조사도 과욕 앞서 필패 확실했다" 평가

4년을 끌어온 국민·농협·신한·우리·하나·SC은행 등 6개 은행의 CD금리 담합 사건이 무혐의로 심의절차를 종료했다. 지난달 22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에서 열린 1차 전원회의 심의에 은행 관계자들이 줄지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4년을 끌어온 국민·농협·신한·우리·하나·SC은행 등 6개 은행의 CD금리 담합 사건이 무혐의로 심의절차를 종료했다. 지난달 22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에서 열린 1차 전원회의 심의에 은행 관계자들이 줄지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영국 금융가의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 사건과 비교되며 4년간이나 끌어온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사건’의 결말은 허무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상 최장기간 공들여 조사해온 사건이었건만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공정위원들 앞에 은행 측과 나란히 앉은 공정위 공무원들은 쏟아지는 질문에 “모르겠다” “(제출된) 관련 내용을 철회하겠다”며 물러서기 바빴다.


특히나 공정위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담합 사건을 놓고 최종의결기구인 전원회의가 사무처 주장을 뒤집는 것은 공정위 입장에서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금융계에서는 금융 분야에 비전문가인 공정위가 과욕을 부린 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차가운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세간의 평가에도 불구, 공정위 관계자는 “그래도 전원회의에서 무혐의가 아닌 심의절차 종료를 택한 것은 증거를 전체의 80%까지는 찾았다는 뜻”이라며 자위하는 모습을 보였다.



◇4년 조사하고도 ‘증거 부족’=지난달 22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공정위원들은 은행 측 대리인보다 사무처의 심사관에게 매서운 질문을 퍼부었다. 쏟아지는 의문에 공정위 심사관들 입에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답변까지 나왔다.

담합을 인터넷 채팅방에서 했다는 심사관의 주장에 대해 공정위원은 “담합은 범법행위인데 은행 과장급들이 이걸 다른 사람이 섞인 채팅방에서 모의했다는 게 이상하다”고 꼬집었다. ‘CD금리 연동 대출’ 등을 대화 소재로 삼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금리를 맞추자는 말은 없었다는 사실도 심사관의 주장을 흔들었다.


‘검찰의 기소장’에 해당하는 심사관의 심사보고서에 오류도 있었다. 농협 측 변호인은 전원회의 중 “공정위가 농협이 특수은행 고시 수익률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지적을 했는데 농협은 CD금리에 특수은행 수익률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사무처 측은 이에 대해 “관련 내용은 철회하겠다”며 순순히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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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를 동원한 은행의 반론도 공정위 심사관의 주장을 꺾었다. 심사관은 은행별 대출잔액 자료를 보여주며 은행이 CD금리를 높게 유지해 부당하게 대출이자 수익을 늘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은행 측은 CD금리는 대출뿐 아니라 다양한 파생상품과도 연동하기 때문에 이를 모두 고려하면 CD금리를 높게 유지할 유인이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부족한 인원으로 보여주기식 조사 나서다 뒤탈=공정위 사무처의 주장이 전원회의에서 뒤집힌 것은 굵직한 것만 따져도 한 달에 한 건꼴이다. 올 들어서만 대형마트 명절 선물세트 가격 담합, 글로벌 정보통신(IT) 업체 오라클의 끼워팔기, 롯데 등 8개 면세점의 환율 담합 의혹이 무혐의로 결론 났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무리한 접근 방식이 탈을 일으켰다고 진단한다. 특히 최근 무혐의로 판단된 사건 중 다수는 2011년 정권 코드에 맞춰 ‘물가 동수’라고 불릴 만큼 물가 관련 조사에 집중한 김동수 전 위원장이 벌인 일이다. CD금리 조사 역시 정황만 가지고 성급하게 덤벼들다 보니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부족한 인원과 예산을 핑계로 든다. 실제 조사를 받는 기업은 대형 법무법인과 전문가로 무장해 총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소수 인력으로 맞서는 공정위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오라클 사건을 처리하며 공정위 사무처는 예산을 아끼기 위해 직접 중소 소프트 업체의 피해 사례를 설문조사해 증거로 제출했지만 오라클 측은 여론조사 전문가를 대동해 조사의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했고 증거는 채택되지 않았다. 최근 담합이 암호로 이뤄지거나 서명 등 증거를 남기지 않고 남기더라도 전혀 엉뚱한 곳에 숨기기 때문에 압수수색 권한이 없는 공정위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한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조사받는 기업은 로펌 코치를 받아서 빠져나갈 답변을 세밀하게 하지만 우리는 증거가 없다고 조사를 덮어버리면 나중에 감사를 받기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1심 법원과 같은 효력을 갖는 공정위 전원회의를 통과했더라도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에서 패소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전원회의가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이유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한 농심의 라면값 담합이 대표적인 사례다. 변호사 출신의 공정위 관계자는 “행정부의 조치는 재판부에서 민사로 취급해 필요한 증거의 80%만 요구하지만 공정위는 과징금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형사 수준으로 엄격한 90%의 증거를 요구한다”면서 “전원회의에서도 이 같은 판례를 중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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