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자위대 창설기념행사에 분노하는 이유

/출처=이미지투데이/출처=이미지투데이




냉전시대 이야기다. 미국과 소련은 자국에서 공부하는 개도국 출신 유학생들 중 명민한 인물들을 골라 ‘화이트 요원’으로 썼다고 한다. 이들의 역할이 대단한 게 아니다. 자국의 동정을 장학금 제공자에게 보고하고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초 자료들을 수집하여 매번 업데이트 해 주는 정도의 일이다. 지금처럼 다양한 정보 확보 채널이 발달한 시대에는 별로 의미 없는 이야기일 지 모르지만, 60~70년대에는 제법 통하던 전략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유학생들이 학위과정을 마치고 본국(本國)으로 돌아가면 자신이 공부했던 나라와 가까운 인물로 분류되곤 한다. 이른바 ‘친X 인사’ 또는 ‘지X파’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다. 그 나라와의 외교 통상 관계는 물론 군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편의 봐주기’가 이루어 진다. 대체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유학한 경우 그 나라의 상류층 또는 기득권층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을 지원했던 나라들 입장에서는 꽤 남는 장사가 된다. 자국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외국의 사회 지도층들을 여럿 길러낸 셈이 되기 때문이다.


주한 일본 대사관에 따르면 오늘 7월 12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 호텔에서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외국 대사관이 주도하여 자기네 나라 ‘군대’가 만들어진 것을 축하한다고 하니 막연히 문제삼을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진짜 문제는 일련의 조치가 한국 내 사회 지도층과의 교감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추론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우리 군의 국장급 인사가 참석하기로 한 것이 알려지면서 적절성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자위대 창설일(1954년 7월1일)을 맞아 매년 서울 호텔에서 열리던 기념행사는 지난 2014년 자위대 창설 60주년 기념행사가 논란이 되면서 주한 일본대사관저에서 행사를 개최해왔다. 3년이 지나 다시 행사의 규모를 키우는 모양새인지라 논란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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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교가는 미국, 유럽 각지에서 ‘지일파’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왔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에 일본학 연구소 설치를 지원하는가 하면, 경제 경영학자들 중 일본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특별 대우를 계속해 왔다. 그리고 이런 후원을 받은 학자들은 어디에선가 일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때에 따라서는 ‘휴민트’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 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는 일본 정부에 제국주의 통치에 대한 통절한 사과와 반성에 입각한 행동을 요구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사죄를 받기는커녕 ‘사과 가능성’의 희망 고문으로 이용당해 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뿐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중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 간의 외교적 긴장 관계 속에서 상당히 난감한 입장에 놓여 있다. 얼마 전 발표된 사드(THAAD) 배치로 인해 외교의 추가 한쪽으로 쏠렸다는 부담감을 저버릴 수 없는 상태다. 이런 판국에 서울 시내에서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 행사라니, 이 잔치를 지지하고 축하할 일본 고위 관계자들과 지일파들이 제대로 된 상황 판단을 하고 있는지는 고민해 볼 일이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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