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시각] 아파트 한 채값이면 지진대응 끝?

한영일 사회부 차장

한영일 사회부 차장한영일 사회부 차장


‘10억원.’

요즘 서울 강남의 웬만한 소형 아파트 값이다. 그렇다면 이 돈이 중앙정부 한 개 부서의 1년 예산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것도 유일하게 지진 대응을 전담하는 곳이라면 말이다. 국민안전처 지진방재과의 예산을 에둘러 말해봤다.


며칠 전 울산 앞바다에서 5.0의 강진이 발생해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오랜만에 국내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고 발생 지역 가까이에 화학공단과 원자력발전소 등이 밀집된 탓에 공포와 우려는 더욱 컸다. 안전처는 당시 긴급재난문자를 늑장 처리해 눈총을 받기도 했다. 매뉴얼 절차와 기술적 한계 때문이라고 안전처는 애써 해명했지만 발생 시각보다 17분이나 늦게 뿌려진 것은 ‘긴급’이라는 타이틀을 부끄럽게 하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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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사건을 좀 다른 시각에서 보면 현 정부의 지진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재난은 예방이 중요하다” “안전은 곧 투자다”라고 부르짖어온 정부. 하지만 거창한 구호 뒤편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부끄럽고 걱정스러운 현실과 직면해야 한다. 지진과 관련해 정부 부처에서 유일하게 전담 업무를 담당하는 지진방재과의 올해 예산은 에누리 없이 10억4,700만원. 이마저도 국가 재난관리 정보 시스템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유지·운영하는 고정비용(8억원)을 빼면 순수한 지진 대응 연구개발(R&D) 예산은 고작 2억4,000만여원뿐이다. 이 정도 예산으로 우리는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지진 대응’ 정책을 기대할 수 있을까. 돈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가 아닌가.

안전처의 한 관계자는 “지진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늘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안전처는 해마다 예산을 짤 때면 기획재정부 등 예산 당국과 논의해보지만 지진은 늘 뒷전이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전처는 지난해 지자체의 공공청사나 교량 등에 대한 내진보강 등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싹둑 잘려나갔다. 결국 담뱃세 인상으로 마련된 재난안전특별교부세를 통해 180억원을 지원해야만 했다. 안전처는 올해도 지진과 관련한 내년 예산 224억원을 예산 당국에 요청해놓았다. 하지만 올해도 지진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뒷방 신세를 져야 할 공산이 크다. 물론 안전처 외에도 지진 예산은 투입된다. 정부는 국토교통부와 교육부 등을 통해 시설물 내진보강 차원에서 오는 2020년까지 총 1조7,000억원을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앞으로 수많은 이유로 야금야금 깎여나갈 수 있는 ‘계획’에 불과하다.

지진이 날 때마다 우리는 판에 박힌 구호를 외친다. “한반도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하지만 고작 아파트 한 채 값으로 지진 대응 정책을 기대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지진은 그냥 ‘남의 일’이라고 말해준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해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부디 생기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hanul@sedaily.com

한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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