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의 일환으로 전력시장 판매 부문을 민간에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일각에서는 전기요금의 인상, 전력산업의 민영화 같은 여러 이유로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전력 판매시장의 개방은 선진화된 전력산업이 나아갈 방향이며 소비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진전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정부가 발표한 전력 판매시장 민간 개방을 두고 한전 판매 부문의 분할 또는 민영화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방안은 한전의 판매 부문을 여러 개로 쪼개 경쟁시키자는 것이 아니며 이 중의 일부를 잘라서 민간에 매각하자는 것도 아니다. 한전은 여전히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가장 큰 사업자로 있을 것이며 그 독점적 지위 또는 시장지배적 지위도 거의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에너지 신산업 사업자에게 판매 부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약간의 길을 터준다는 정도의 의미다. 예를 들면 태양광발전을 통해 생산한 전력을 일반 소비자 또는 기업에 판매할 수 있도록 기업형 프로슈머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제한적으로 전력 판매시장을 일부 민간 기업에 대해 열어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필자는 오히려 판매시장의 개방폭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제대로 효과가 발휘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전기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는 판매경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오해라고 생각된다. 즉 소비자들은 현재 한전이 공급하는 요금을 선택할 수도 있고 새롭게 판매 부문에 참여하는 사업자들로부터 살 수도 있게 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해 고르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인상되리라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전력 소비자들에게는 더 좋은 옵션으로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그 결과 현재 한전의 전기요금 약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방식의 전기요금 체계가 제시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인 또는 2인 가구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어서 기본요금은 싸지만 사용량 요금은 비싼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으며 반대로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의 경우는 기본요금은 비싸되 사용량 요금은 싼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소비자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소의 정전 가능성을 감내하는 저렴한 요금제와 반대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보장하는 높은 요금제 중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전력 판매회사가 여름철 전력 피크 때 에어컨 소비를 자율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요금을 다소 싸게 할 수 있는 옵션도 제시될 수 있다.
이번 판매 개방으로 주택용 소비자들은 지금까지 지나치게 높은 요금을 낸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맞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용도에 따라 차별적으로 요금을 적용해 주택용 소비자는 높은 요금을 내고 있고 산업용과 농업용 소비자들은 원가에도 미치지 않는 싼 요금을 지불한다. 이른바 소비자 간 교차보조가 심하다. 주택용 소비자들의 경우 누진요금은 6단계까지, 누진율은 최고 11.7배에 이르고 있다. 100kwh를 사용한 경우와 그 10배인 1,000를 사용한 경우를 비교하면 부가세까지 포함할 때 소비자가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무려 73배의 차이가 난다. 주택용 소비자에게는 요금 폭탄이라는 말이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전력의 판매 개방은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나 한전도 이런 요금제도를 개선하고 싶어도 정치권과 국회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나 판매 개방으로 자연스럽게 이러한 문제들이 개선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판매시장 개방은 소비자선택권의 확대를 통해 전력 서비스를 다양하게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요금제를 설계하고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전도 최대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독점사업자로서 지나치게 안일하게 사업을 영위했던 한전도 판매 개방에 따라 창의적인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내놓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된다. 판매 개방은 새로운 판매사업자가 물꼬를 터서 전력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고 무엇보다도 서비스 개선으로 소비자들에게 큰 혜택이 돌아가는 ‘메기효과’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