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부실 인증' 환경부, 폭스바겐 사태 키웠다

관례적 서류조작 불구 10년 가까이 적발 못해

인증담당 직원은 갑질에 금품·향응 제공받기도

인천 서구 경서동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에서 조사관들이 배출가스 조작 파문을 일으킨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차량인 ‘골프’와 ‘뉴비틀’을 검사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천=이호재기자인천 서구 경서동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에서 조사관들이 배출가스 조작 파문을 일으킨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차량인 ‘골프’와 ‘뉴비틀’을 검사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천=이호재기자




아우디코리아는 ‘A6’를 국내에 들여오면서 유럽에서 인증받은 수동모델의 성적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다양한 세부 트림이 있겠지만 현행법상 인증과정에 기본 차종 하나만 인증받으면 판매하는 데 지장이 없다. 문제는 국내에 수동모델이 판매되지 않는다는 것. 환경부는 자동모델의 성적서를 다시 요청했다.


수동과 자동이라는 변속기 차이가 있지만 환경부에서 관할하는 배출가스 등과 관련된 300여개의 부품은 변속기와 무관하게 두 모델이 같다. 배출가스나 소음 시험 성적도 일치한다. 유럽에서 다시 성적서를 받을 때까지 수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알았던 아우디코리아 인증 담당자는 수동차량의 성적서를 자동차량의 것처럼 손쉽게 고쳤다. 새로 제출한 성적서를 받은 환경부는 아우디 A6의 무사히 인증을 통과시켰다.

일종의 ‘법규’라고 볼 수 있는 인증.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인증은 너무나 허술하게 관리돼왔고 폭스바겐 사태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다. 그 중심에는 바로 환경부가 있다.

검찰이 지금까지 파악한 인증서류 조작 차량은 지난 2007년 이후 판매된 30여차종, 70여개 모델이다. 10년 가까이 수십 차종의 서류가 조작됐지만 정작 인증을 담당하는 환경부는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그럼에도 이번 서류 조작과 관련, “차량 성능에는 문제가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렇게 쉽게 조작과 인증이 이뤄진다면 다른 수입차들도 아우디폭스바겐처럼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건 검찰에 물어봐야겠지만 당연히 그런 것 아니겠는가”라고 답했다. 서류 조작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우디폭스바겐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조작은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관례’라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환경부 담당자는 오히려 “문서를 정밀조사할 수 있는 수사 권한이 없는데 컴퓨터를 우리가 뒤져볼 수도 없고 당연히 속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자동차업계에서 환경부의 부실한 인증과정이 최근 도마 위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인증을 취소해 사실상 판매가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는 주체지만 역설적으로 10년 가까이 아우디폭스바겐의 서류 조작을 방관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수입차업계에서는 “인증서류 조작에서는 국내에 차를 팔고 있는 모든 업체가 자유롭지 못하다”며 “각 업체 인증 담당자들이 언제 불똥이 튈지 몰라 벌벌 떨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돈다.

관련기사



환경부는 앞서 닛산 캐시카이 차량의 배출가스 임의 조작 결과를 발표했을 당시에도 뒷북 조치 논란에 휩싸였다. 환경부 산하에서 인증절차를 담당하고 있는 김정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장은 “인증 때 서류상으로 보기 때문에 100% 확인을 못 한다”며 “그래서 수시검사를 해마다 하고 외국 정부도 인증 뒤 수시검사를 통해 불법조작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인증절차에 허점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인증받지 않은 변속기를 장착한 S클래스 차량을 판매해 비판을 받을 당시도 상황은 유사하다. 수입차 업체의 한 관계자는 “변속기 성능이 좋아진 사례라 큰 문제가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인증받지 않은 차가 거리 위를 활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반면 담당 정부기관은 인증을 볼모로 ‘갑질’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수입차 업체로부터 환경 인증 관련 불만을 접수한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는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을 넘어선 과도한 규제를 일삼고 있는 정부를 향해 공식 항의를 벌였다.

조사결과 인증을 담당하는 교통환경연구소 A직원은 2009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환경인증을 신청한 수입차 업체로부터 모두 113회에 걸쳐 수천만원어치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하루라도 빨리 인증절차를 마치고 판매에 나서야 하는 업체들에 ‘인증’을 빌미로 협박을 일삼은 것이다.

올 초에는 연구소 연구원이 직접 나서 정부의 인증절차를 비판하고 나섰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을 담당하던 B연구원은 연구소 전체 직원에게 e메일 보내 “왜 엉터리 검증방법을 끊임없이 주장하느냐. 교통환경연구소가 폭스바겐의 대변인으로 전락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고 비판했다. 또한 “2010년 이후 5년간 신규 연구사 채용 숫자 0명, 냉혹한 우리 연구소의 현주소”라며 열악한 국내 인증환경에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인증절차를 세밀하게 재정비하고 정부가 해당 기관을 철저히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부족한 인력이 수많은 차량 인증을 하다 보니 업무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이번을 계기로 시스템을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원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