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적과 함께 춤을 ...미·소 우주 도킹



1975년 7월18일, 대서양 상공 224㎞ 우주공간. 간격을 좁힌 미국의 아폴로 18호와 소련의 소유즈 19호 우주인들이 교신을 나눴다. 지상관제소 요원들도 숨을 죽였다. 관제소의 대형 모니터에 비친 우주선의 모습은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한참 줄인다고 줄인 실제 속도는 시속 약 3,000㎞(마하 2.45). 컴컴한 우주공간을 나는 쇳덩이 속의 우주인들은 막상 담담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소유즈) 아폴로의 모습이 보인다. 아름답다.


△(아폴로) 이봐, 소유즈. 이제 접근해간다.

-제발 엔진 끄는 것 잊지 말게나.

△5m 이내로 접근한다. 3m…1m…. 접촉…붙잡았다…성공, 성공! 모든 상태 양호하다!

미국과 소련의 지상관제소에서도 환호성이 터졌다. 양국의 우주선이 연결된 것은 18일 새벽 1시9분(한국 시각). 치열한 군비·우주경쟁을 펼쳐온 미·소 양국의 우주선끼리 사상 처음으로 결합했다는 소식은 지구촌을 달궜다. 냉전의 시대가 종식을 고하고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기대도 퍼졌다. 그야 말로 ‘꿈 같은 결합’이었다.

착오가 있다면 단 한 가지. 도킹 장소가 변경됐다는 점 뿐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계획했던 연결 지점은 독일 엘베강 225㎞ 상공.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양국의 병사들이 만나 악수를 나눴던 지점이었다. 동맹군이었던 과거를 일깨우기 위해 이 지점에서 새벽 1시 15분께 결합할 예정이었으나 아폴로 18호의 속력이 예상보다 빨라 도킹 시간이 6분 당겨졌다. 지점도 스페인과 포르투갈 부근의 대서양 상공으로 바뀌었다. 연결 부위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대수롭지 않은 수준이었다.


도킹에 성공한 아폴로호 미국인들은 소유즈호를 찾아가 선물을 건넸다. 양국 우주인들은 포드 미국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축하 메시지를 들은 뒤 러시아식 아침 식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두 차례 도킹에 소요된 시간은 정확히 1일 23시간 7분 3초. 짧은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이때만큼은 이념도, 적도 없었다.

관련기사



미국과 소련이 우주 도킹을 약속한 시기는 1972년 5월. 무한경쟁으로 치닫던 미·소 양국이 우주쇼를 펼친 것은 경제적 난관 때문이었다. 미국은 달러화의 금태환 포기를 선언(1971년8월15일 닉슨 쇼크)할만큼 달러 약세와 경제난에 시달렸다. 소련도 연이은 흉작과 군사비 과다지출로 생필품과 경공업제품 부족사태가 심화하는 어려움 속에서 과도한 우주경쟁을 자제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아폴로-소유즈 실험 계획(Apollo-Soyuz Test Project)’으로 이름 붙여진 우주 데탕트 아래 양국의 우주인들은 서로 훈련센터를 방문해 언어를 익히고 상대방 우주선의 작동 원리를 익혔다. 지상훈련에서 실제 우주선 발사, 우주 랑데뷰, 인공일식 실험까지 미국과 소련이 지출한 비용은 각각 2억5,000만달러. 덕분에 인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소득을 얻었다. 3차대전 발발 가능성을 막고 공동 번영과 전진의 가능성을 봤다.

두 초강대국의 우주 데탕트 20년이 흐른 1995년 6월29일, 미국의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와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가 결합했다. 핵무기 경쟁이 한창이던 1975년의 결합은 ‘깜짝 이벤트’의 성격이 강했다지만 ‘냉전기에도 우주에서는 협력했다’는 경험 덕분에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러시아 우주정거장 간 결합인 ‘셔틀·미르 프로그램’ 역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러시아의 미르는 1998년까지 4년간 8차례나 더 결합해 미국인 우주인 7명이 977시간 동안 미르에 머물렀다. 두 나라는 상호이익을 거뒀다. 러시아에 4억 달러를 지원하고 도킹을 성사시킨 미국은 상대적으로 뒤진 우주정거장 기술 습득과 국제 우주개발 주도권 확보라는 과실을 얻었다. 러시아는 돈이 없어 중단할 처지였던 미르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있었다.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이 총동원된 우주 도킹쇼가 펼쳐지던 순간을 한국인들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바로 그날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에 정신을 차릴 여지가 없었다.

41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온갖 첨단기술이 동원되는 우주 랑데뷰의 가장 큰 난관은 언어장벽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기술진과 우주인들이 같이 훈련받고 기술 문제를 토의하는 과정에서 언어상의 작은 오해가 온갖 실수와 불협화음을 낳았다. 얼마 안 지나 두 나라는 최적의 해법을 찾아냈다. 미국인은 러시아어로, 소련인들은 영어로 말하는 게 최상의 조합이었다.

인간에게 희망을 안겨준 41년 전 우주 도킹에서 오늘을 본다. ‘악의 축’인 소련만 망하면 세계는 평화로울 것이라고 여겼건만, 소련 해체 4반세기를 넘기는 지금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지구촌, 특히 한반도는 긴장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길은 원칙과 기본에 있다. 상대방의 언어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주에서 점과 점이 만나기 보다 어려울까.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