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제조업리스타트]최고스펙보다 기술최적화...삼성 갤S7, 소비자를 움직였다

<3>기존 성공방정식을 뒤집어라

갤S7, 군살 빼고 방수·배터리 등 실용에 주안점

완제품만 만들던 포스코, 기술 수출기업 탈바꿈

현대·기아차 '커넥티드 카'로 車문화 업그레이드



삼성전자가 지난 2·4분기 8조원이 넘는 잠정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깜짝 실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표 스마트폰인 ‘갤럭시S7’의 선전이 있었다. 갤럭시S7은 출시 20일 만에 1,000만대를 팔아치우며 기존 최대 히트 작품인 갤럭시S4(28일)의 기록을 새로 썼다. 반도체에 밀리며 ‘2등 사업부’로 주저앉을 뻔했던 삼성전자 IT·모바일(IM) 사업부의 자존심도 세웠다.

그런데 삼성 내부에서는 이번 흥행에 대해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깼기 때문에 오히려 혁신이 가능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드웨어 분야에서 언제나 1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자 오히려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갤럭시S7은 출시 초기 외형 측면에서 시장을 놀라게 할 ‘한방’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명 엣지 디스플레이나 디자인이 전작인 갤럭시S6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성능을 좌우하는 ‘스펙’ 역시 경쟁 제품들을 크게 앞선다고 보기 어려웠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제품은 개발 초기부터 기술을 과시하려 들지 말고 군살을 뺀다는 느낌으로 소비자에게 최적의 만족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내놓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며 “최고 스펙만을 추구했던 하드웨어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일부 반발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군살을 덜어낸 덕분에 갤럭시S 시리즈 중 최고의 명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이 갖고 있던 기존 기술은 적극적으로 다시 발굴해 접목시켰다. 예컨대 상대적인 ‘실패작’으로 분류됐던 갤럭시S5의 방수 기능을 다시 되살려 소비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발열 문제는 잡고 배터리 실사용 시간은 늘려 소비자들에게 쾌적한 사용환경을 제공했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이 하드웨어 경쟁 대신 제품 최적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수율을 확보하고 원가를 개선할 수 있었다”며 “엣지 형태의 스마트폰이 삼성만의 차별화 포인트로 인식돼 디자인에 관심이 큰 소비자들의 수요도 만족시켰다”고 평가했다.

한계상황에 처한 국내 제조업이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성공 문법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최고의 품질을 내는 방식으로 미국과 일본의 경쟁자들을 추격해왔고 여기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중국이 전자·자동차 등 주요 분야에서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어 앞으로는 이런 방식이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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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고객이 절실하게 원하는 분야에 대한 상품을 만들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며 “기존에 수립했던 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지속적인 검증과 업그레이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삼성 갤럭시S7이 보여준 기술 최적화(optimization)가 이런 혁신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하드웨어 1등을 추구하던 삼성이 기술 과시에서 벗어나 활로를 찾은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닌텐도의 ‘포켓몬 고(go)’ 역시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게임에 적용된 가상·증강현실 기술은 이미 상당한 진전을 이뤄 웬만한 정보기술(IT) 업체들은 당장 구현이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닌텐도는 여기에 독자 콘텐츠를 더해 온라인 투 오프라인(O2O)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기술의 우월성보다 차별성에 소비자가 열광한 셈이다.

철강 업계의 퀄컴을 꿈꾸는 포스코 역시 기존 성공 방정식을 뒤집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기업으로 꼽힌다. 포스코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으로 쇳물을 생산해낼 수 있는 ‘파이넥스(FINEX)’ 공법을 2007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중국에 이어 이란 등에 잇달아 수출하고 있다. 후판과 같은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던 기업이 집요한 연구개발(R&D) 결과 기술을 내다 파는 기업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현대·기아자동차 또한 최근 기존의 자동차와 완전히 다른 형태의 ‘커넥티드카’를 내놓고 자동차 문화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를 단순한 ‘탈 것’이 아닌 ‘생활’의 중심으로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전략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4월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 1위 기업인 시스코의 척 로빈스 회장을 직접 만나 커넥티드카 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협의에 나섰다. 그동안 자동차 강판에서 엔진까지 타사와의 기술 제휴를 최소화하고 독자 기술 개발에 매진해왔던 행보와 비교하면 파격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현대차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금 밀리면 뒤처질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 아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혁신을 전 임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더해 성공 문법을 뒤집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용인할 수 있는 기업 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세계 최초로 기기 간 결합이 가능한 모듈형 스마트폰인 G5를 내놓아 화제를 불러모았지만 실적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LG전자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다듬어지지 않은 엉뚱한 상상들이 시장을 선도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재탄생할 수 있다”며 “조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제대로 실행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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