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해방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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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남산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경리단길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한신아파트를 오른쪽으로 끼고 조금 더 올라가면 2차선 도로 양쪽으로 자그마한 가게들이 보인다. 여기부터가 해방촌이다.


해방촌은 남산 중턱에 들어서 있다. 원래 이곳의 주인은 ‘남산 위의 저 소나무’와 더불어 살던 호랑이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조금씩 개발되면서 사람에게 밀려났다. 해방이 되자 공산 정권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 실향민들이 모여들었다. 해방촌이라는 이름도 해방과 더불어 조성됐다고 해 그렇게 지어졌다. 한국전쟁 후에는 살길을 찾아 무작정 상경한 시골 사람들이 더해지면서 거대한 산동네 판자촌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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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오발탄’은 전쟁 직후 해방촌을 무대로 암담한 사회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철호는 전쟁으로 정신이상이 된 어머니, 만삭 부인, 백수 남동생, 양공주 여동생과 함께 이곳 판잣집에서 아무런 희망 없는 삶을 산다. 실향민도 시골 사람도 꿈을 찾아 이곳에 터전을 잡았지만 돌아온 것은 철호처럼 희망 없는 삶이었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이곳에서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어 다른 곳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해방촌 사람들은 그렇게 나가는 것을 ‘해방됐다’고 표현했다.

그런 해방촌이 이른바 뜨는 동네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후반이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다 보니 청년 예술가들이 예술공방을 내며 둥지를 틀었고 인근 이태원동에서 가게를 하던 사람들도 모여들어 ‘미니 이태원’을 만들었다.

서울시가 해방촌을 전통과 문화가 살아 있는 아트마켓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전성기를 누리다가 지금은 쇠퇴한 니트 산업과 최근 들어선 예술공방 등을 결합해 예술마을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요즘 문제가 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시가 계획을 잘 실천해 해방촌 주민들이 앞으로는 해방촌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기석 논설위원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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