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잔치’로 기대를 모아온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첫날인 25일(현지시간) 대선후보 경선기간 당 지도부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편파적으로 따돌리고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원했다는 폭로전의 후폭풍에 휩싸이며 분열과 충돌로 얼룩졌다. CNN 등 미국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지난주 전대 효과를 등에 업고 클린턴 후보에 비해 2~4%포인트 높은 지지율을 끌어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클린턴과 민주당으로서는 전당대회를 계기로 트럼프의 추격을 따돌리기는커녕 ‘역(逆)컨벤션 효과’에 자칫 본선 대결 초반부터 트럼프에 끌려갈 처지에 놓인 셈이다.
11월 미국 대선의 대표적 경합주 가운데 한 곳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웰스파고센터’에서 막이 오른 민주당 전대는 당 지도부가 비주류인 샌더스 의원을 조직적으로 깎아내리고 클린턴을 지원한 e메일 폭로 사건이 집어삼켰다. 분노한 샌더스 의원 지지자 수백여명은 36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도 필라델피아시청에 모여 집회를 열고 행진시위를 진행했다. 일부 열성 ‘버니’ 팬은 공화당 구호인 ‘힐러리를 감옥으로’를 외치며 전당대회장 근처까지 몰려들며 2m 높이의 철제 펜스를 흔들어댔다. 이 과정에서 50여명의 클린턴 후보 반대자들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클린턴 편파 지원 e메일로 사임한 데비 슐츠 대신 민주당 전국위원회 임시 의장을 맡은 도나 브라질은 “e메일에 담긴 용서할 수 없는 발언들에 대해 샌더스 의원과 지지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지만 사태 수습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회장 내부에서도 개막 직후 클린턴 지지자와 샌더스 지지자들이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수차례 연출됐다. ‘힐러리’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야유를 퍼부어 사회자의 ‘개막 선언’이 묻힐 정도였다. 신시아 해일 목사는 전대 축하기도를 하다 욕설들과 환호성이 난무하자 15초가량 기도를 중단해야 했다.
여기에 클린턴이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팀 케인 상원의원이 과거 버지니아 주지사와 부지사로 일하며 220건에 걸쳐 16만달러어치의 선물을 받은 리스트가 공개돼 클린턴 후보를 연거푸 궁지로 몰아넣었다. 트럼프는 민주당 전대가 대혼란을 빚자 “민주당과 비교하면 공화당 전당대회는 정말 순조롭게 진행됐다”면서 “민주당 전당대회는 완전히 엉망진창”이라며 민주당의 분열을 비꼬았다.
트럼프의 지적처럼 지난주 공화당 전대는 트럼프의 지지율에 톡톡히 효자 노릇을 했다. CNN이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미 전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48%의 지지율로 45%에 그친 클린턴을 역전했다. 공화당 전대 이전 CNN 조사에서는 클린턴이 49%로 트럼프(42%)를 크게 앞선 바 있다.
하지만 클린턴도 이날 전대 막판 재역전의 발판은 마련했다는 평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뛰어넘는 인기를 지닌 영부인 미셸 여사가 “나는 힐러리 편(I’m with her)”이라고 지지를 선언하고 “내 친구 힐러리 클린턴만이 유일하게 미국 대통령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띄우며 전대 후반 분위기는 함성과 박수 소리로 반전을 이뤘다.
특히 패자인 샌더스 의원이 마지막 지지 연설자로 나서 경선 결과를 완전히 수용하며 클린턴에 힘을 보탰다. 그는 “많은 사람이 최종 결과에 실망한 것을 알지만 나보다 더 실망한 사람은 없다”고 강조하며 클린턴을 비난하던 지지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샌더스는 그러면서 “클린턴이 반드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샌더스는 30분의 연설 중 클린턴을 15차례나 언급하며 지지를 호소해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공화당 후보들과도 대조를 보였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