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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60분’ 선감도 '선감학원', 정부에 의해 자행된 참혹한 인권 유린

‘추적60분’ 지옥의 섬 선감도, 정부에 의해 자행된 참혹한 인권 유린‘추적60분’ 지옥의 섬 선감도, 정부에 의해 자행된 참혹한 인권 유린




‘추적60분’에서 지옥의 섬 선감도의 묻혀진 진실을 파헤쳤다.


27일 방송된 KBS2 ‘추적60분’에서는 ‘유골은 말한다 - 선감도의 묻혀진 진실’편이 방송됐다.

1963년 어느 날, 8살 쌍둥이 형제는 시장에서 그만 할머니의 손을 놓치고 만다. 형제는 경찰에 의해 아동보호시설로 옮겨졌고, 그 길로 영문도 모른 채 경기도의 한 섬으로 끌려가 부랑아 수용시설에 수용된다. 도착한 그 곳에는 이미 쌍둥이 형제 또래의 소년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시작된 지옥 같은 생활. 쥐나 뱀까지 잡아먹으며 배고픔을 견뎌내야 했던 것은 물론, 무자비한 폭력과 강제노역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결국 쌍둥이 형은 수용시설에서 1년이 채 못 되어 숨지고 말았다.

쌍둥이 동생 허일용 씨는 “사람들하고 섞여서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들어왔죠. 완전 수용소 같은 데였어. 걸핏하면 군대식으로 하고 어린 애들을 그런 식으로 다 관리 했으니까“라고 당시의 기억을 전했다.

형제가 끌려간 시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에 일본이 세운 건물로 태평양전쟁의 전사 확보를 명분으로 아동, 청소년을 강제 입소시켜 노역·폭력·학대·고문을 하며 인권을 유린했던 곳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광복 이후, 선감학원에 대한 관리가 경기도로 이관됐고, ‘부랑아 수용시설’로 다시 문을 연 이곳에서는 끔찍한 인권유린이 계속 자행됐다.


쌍둥이 형과 선감학원에 입소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갑작스런 형의 죽음을 접해야 했던 허일용 씨(61), 당시 8살이었던 허씨는, 52년이 지나도록 숨진 형이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만난 선감학원 원생 출신이라는 한 제보자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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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22년 근무자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애들은 다 빡빡머리거든 내가 6명 정도 묻었는데 병원에서 죽은 쌍둥이 형도 기억이 나“라고 털어 놓은 것.

선감학원 출신 생존자들과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감학원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진 야산에는, 불법 암매장 된 원생들의 시신이 수백 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일부 지역을 GPR(지반탐사기)로 조사한 결과, 최소 120여구가 매장 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원생 출신 김 씨의 증언을 토대로 쌍둥이 형의 유해 발굴 작업에 나선 취재진. 안중근 의사와 6.25전사 유해발굴에 참여했던 고고학자 박선주 교수와 국과수 출신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이 현장에 함께 했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서서히 드러난 것은, 나무뿌리에 엉킨 유골의 잔해와 어린아이의 고무신 한 켤레였다.

선감학원의 비극적인 실상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일본인 ‘이하라 히로미츠.’ 일제 시대 선감학원 부원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선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원생들의 참상을 생생하게 목격했다는 그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해방 후 30년간 더욱 끔찍한 방식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하라 히로미츠 씨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45년에 끝난 후에 몇 십 년이나 더 있었는데..그 때 죽은 사람이 있고, 죽은 사람을 몇 명을 한 구덩이에 묻고..일본 시절보다 더 심했다고 들었어요. ‘한국인들끼리도 똑같이 했구나’ 라고 생각했죠“라고 밝혔다.

이 참혹한 인권유린을 자행한 곳이 바로 ‘대한민국 정부’였다. 어린 나이에 섬에 끌려와 인권을 유린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아이들. 하지만 2016년 지금까지도, 피해 조사는 물론 어떤 대책이나 지원도 전무한 상황이다. 진상규명에 대한 움직임이 부진한 이유에 대해,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선감학원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이야기 한다.

[사진=KBS 제공]

전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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