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공공조달 해결책

정양호 조달청장





누군가가 역 편의점 앞에 쓰러져 있는 취객에게 다가가 지갑을 훔치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CCTV(Closed Circuit TV)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절도범은 현장에서 단 3분 만에 검거됐다. 전 세계적으로 약 3,400만대, 국내에만 약 300만대의 CCTV가 설치된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에서는 사람이 하루 평균 300회 이상 CCTV에 노출된다고 한다. 사생활 침해 등 단점도 있지만 범죄예방 효과 측면에서 장점이 더 많다. 영국의 특정 지역에 1년간 CCTV를 설치하고 설치 전·후를 살펴보니 범죄가 73%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러한 범죄예방 효과 외에도 많은 인력을 대체하는 효과까지 덤으로 따라온다.

요즘 들어 CCTV와 같은 역할이 공공조달시장에서 절실히 요구된다. 공공조달시장에서 불공정 조달행위가 지능화되고 있지만 이를 예방하고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은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 불공정 조달행위인 원산지 위반 사례의 경우를 보자. 조달업체가 중국에서 저가로 수입한 제품을 실제 자신이 생산한 제품으로 속여 팔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수요기관은 국산품으로 믿고 산다. 제품의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외화는 유출되고 국내 고용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달청은 이러한 불공정 행위가 적발되는 경우 엄격하게 다루지만 사후조치에 머물고 있다. 결국 사후 약방문인 셈이다. 사전에 이를 예방하고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조달청은 계약이행과정에서 시스템적으로 불공정 조달행위를 차단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바로 조달 계약을 둘러싼 각종 정보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구축에 들어간 ‘공공조달 계약이행 확인시스템’은 조달 계약을 둘러싼 각종 정보가 공유되는 곳이다. 조달 계약 당사자는 CCTV를 돌려보듯이 이 시스템을 통해 계약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판매자의 실제 생산 여부도 한국전력공사에서 제공하는 공장의 전기사용량 정보로 쉽게 적발이 가능하다. 따라서 판매자가 제조도 하지 않으면서 외국산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하기가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불공정 조달행위가 사전에 예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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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스템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서로 벽을 허물고 협업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어서 더더욱 의미가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전력사용량 정보를 비롯해 한국산업단지공단의 공장등록증, 한국에너지관리공단의 고효율에너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 등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정보를 전자계약시스템인 나라장터로 통합하는 작업이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생산현장에 실사를 나가지 않더라도 불공정 조달행위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조달청은 이미 유관기관과 시스템 구축과 정보제공을 위한 협약을 마무리하고 올해 10월쯤에는 위장 제조업체의 불법납품을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공공조달시장 규모는 약 110조원에 이른다. 충분한 구매력을 갖춘 ‘큰손’이기 때문에 탈법적인 경제행위를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공공조달시장에서 계약 이후의 사후관리가 충분하지 못했다. 현장실사 권한이 제한돼 있는데다 인력과 시간적인 제한으로 서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한계가 있었다. 불공정 행위는 공공조달시장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심지어 양심적이었던 조달업체마저도 부도덕한 업체의 행태를 닮아가는 부작용마저 드러나고 있다. 조달업체의 불공정한 행위는 결국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하는 것이며 경제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다. 탈법적인 불공정 조달행위는 강력하게 처벌돼야 한다. 조달시장의 CCTV인 공공조달 계약이행 확인시스템이 불공정한 조달행태를 바로잡는 초석이 됐으면 한다.

정양호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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