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도심 곳곳에 마구잡이로 주차돼 교통혼잡을 가중시키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관광버스 주차난을 해결한다며 서울역과 이태원 등 도심에 만든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은 대부분 텅 비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을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이 업계의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해 시내 한복판 알짜배기 땅을 놀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7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찾은 서울역 서부 일대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은 총 33면의 차량 주차 공간을 갖추고 있음에도 주차된 버스가 단 세 대에 불과했다. 지난 3월 운영을 시작한 이 주차장은 일반 차량이 주차할 수 없어 관광버스 30대가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비어있었다. 이 일대를 지나 통학한다는 안모씨(31)는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5대 이상 주차돼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며 “아무리 시유지라고 하지만 비싼 땅을 이렇게 놀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곳 부지의 임대료로 연간 8억원을 지불하고 있다.
지난 6일 찾은 한남동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4월 제일기획 뒤편에 19면으로 조성된 이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에 관광버스는 한 대도 없었고 승용차 한 대만 주차돼 있었다.
관광버스 기사들이 전용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관광업계의 행태 때문이다. 서울 주요 면세점들은 주차공간이 없는 관광버스에 유류비로 1만~2만원을 제공하는데 일정이 보통 1시간 단위로 짜인 관광버스 기사들이 도심의 교통난을 헤치고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을 이용하기보다는 면세점 주위에서 기다리는 편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음식점들이 단체 손님을 받으면서 주정차 위반 과태료(4만원)를 대납해주겠다며 불법정차를 유도하는 행태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번 단속을 하면 2시간 내에는 다시 단속할 수 없는 규정과 낮은 과태료 때문에 단속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관광버스에 대한 과태료 인상 권한을 가진 경찰청에 건의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을 만든다는 서울시의 계획이 처음부터 업계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서울역 서부나 한남동 제일기획 뒤쪽은 항상 교통체증이 심한 곳으로 대형 차를 모는 기사들에게는 접근성이 좋지 않다. 게다가 관광버스 기사들에 대한 안내도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로 명동 거리 인근에 차를 대놓은 관광버스 기사 김모씨는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에 대해 잘 모른다”며 “전용주차장이 있다고 해도 관광객들이 면세점에서 쇼핑하는 1~2시간 사이에 교통체증을 뚫고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에 다녀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