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은 이런 내용을 담은 법무부의 ‘복합중재센터 설치 및 운영 타당성 검토 보고서’를 11일 입수했다.
보고서는 중재산업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세계적 규모의 신규 국제중재센터 설치가 필수적이라는 내용과 함께 설립 계획의 구체적 청사진과 경제성 분석 등을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법무부는 서울 시내 주요 랜드마크에 최소 2000 ㎡ (약 600평) 규모의 최신식 중재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중재가 이뤄지는 심리실만 14개에 국제기관 사무소를 위한 입주 공간과 최신식 회의 설비까지 갖춘다는 구상이다. 이 정도 시설 규모는 전 세계 중재시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로 평가 받는다. 세계 정상급 중재시설로 꼽히는 싱가포르 맥스웰 체임버스는 약 1,500평, 프랑스의 ICC는 1,000여평, 홍콩의 HKIAC는 400평 정도다.
입주 장소 후보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아셈타워와 트레이드 타워, 역삼동의 강남 파이낸스센터, 중구의 서울 스퀘어 등이 꼽혔다. 삼일회계법인은 각 후보들의 접근성, 시설 적합성, 주변 환경 등을 분석한 결과 아셈타워를 가장 경쟁력 있는 장소로 꼽았다. 실제 2017년 센터를 짓는다는 가정 하에 시설 임대 수익을 추산한 결과 아셈타워는 2021년에 31억5,000만원의 매출이 발생, 후보지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또 중재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해야 할 ‘미래 산업’이라고 지적했다. 중재는 엄격한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하는 재판과 달리 분쟁 당사자 간에 자유롭게 중재 장소와 중재인을 정해 합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제도다. 우리나라가 중재 인프라가 좋다는 평가만 받으면 미국 기업과 중국 기업 등 제3 국가 간 중재도 얼마든지 ‘유치’할 수 있다. 이렇게 국제중재를 유치하면 시설 사용료, 중개 수수료, 중재인 보수 수익은 물론 중재 관계자들이 한국에 머물면서 쓸 숙박비, 식료품비 등까지 막대한 수입을 벌 수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제중재 사건 1건을 유치하면 약 24억4,000만원의 경제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제중재를 약 200건만 유치해도 연간 6,000억여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것이다.
더구나 중재는 절차가 간편하고 신속하다는 등 장점 때문에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전세계 국제중재 사건은 2003년 2,241건이었으나 2008년 3,177건, 2013년엔 3,714건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재 시설의 열악함 등 때문에 중재산업의 발전이 더딘 편이다. 한국은 현재 중재 시설로 대한상사중재원과 서울국제중재센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2곳을 합쳐도 시설 규모가 600㎡(약 180평) 정도에 그친다. 한 중재 전문 변호사는 “심리실 규모 자체도 작거니와 심리 이전에 고객들이 모여 회의할 수 있는 공간도 변변히 없어 외국 기업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메리트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2013년 국제중재 유치 건수가 77건에 그쳤다. 미국 1,165건, 프랑스 767건, 싱가포르 223건 등에 비해 매우 초라한 수준이다. 세계적 수준의 신규 중재센터 설립이 필수적인 이유다. 일례로 싱가포르는 2009년 국제중재 유치 건수가 160건이었지만 이듬해 맥스웰 체임버스라는 중재시설을 새로 지으면서 2015년 271건까지 급증했다.
중재 분야 권위자 중 한 명인 김갑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대륙법과 영미법 체계를 아우르는 법적 환경을 가졌고 강대국들 사이 중립적인 위치를 지닌 데다 사법제도도 안정돼 있어서 물적 인프라가 뒷받침되면 세계 최고의 중재지로 클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중재 강국으로 인정받는 싱가포르, 홍콩은 물론이고 최근엔 중국과 일본도 중재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라 우리나라도 중재산업 활성화를 더 미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중재 제도를 꾸준히 개선해 중재산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된 상태”며 “연구용역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제중재센터 설립 계획을 잘 준비해서 내년부터 사업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