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이슈&워치]땜질…땜질…땜질…누더기 된 경제정책

연말정산·추경서 전기료까지

원칙 없는 '여론 달래기' 처방

즉흥 결정 계속땐 경제 악영향

1315A01 원칙 없는 경제정책1315A01 원칙 없는 경제정책




정부가 들끓는 여론을 달래기 위해 가정용 전기요금 한시 인하를 결정하면서 현 정부의 원칙 없는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전기료 누진제 개편은 없다”고 선언한 지 이틀 만에 말을 뒤집었다. 이에 앞서 올해도 어김없이 자신들이 짠 예산을 반년 만에 수정하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박근혜 정부 4년 중 세 번째다. 지난해는 연말정산도 여론에 휘둘린 결과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근로자를 절반이나 양산하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결과를 초래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기조가 원칙에 입각하기보다는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즉흥적으로 수정되는 상황”이라며 “대선을 앞두고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가 지난 11일 내놓은 전기요금 한시 인하는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지만 한편에서는 흔들리는 경제정책의 결정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요금 인하 결정 이틀 전만 해도 “누진제 완화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 에어컨을 하루 4시간 정도만 현명하게 사용하면 요금 폭탄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들의 불만이 확산되고 박 대통령이 “좋은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하자 순식간에 입장을 바꿨다. 논리도 스스로 뒤집었다.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전기료 폭탄을 맞는다는 6단계에 속하는 가구는 4%에 불과하다”며 “누진제 개편은 부자 감세의 우려가 있다”고 누진제 완화 불가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틀 뒤 우태희 산업부 2차관은 “장기간의 폭염으로 5~6단계에 추가 진입하는 가구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요금을 한시 인하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경제학회장 출신의 한 대학 교수는 “정부 정책이 원칙에 입각해야 경제주체들도 이에 대응해 계획을 세우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며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들은 목소리가 큰 쪽으로 즉흥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점점 포퓰리스트 정부가 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잘못된 정책이라면 버티는 것보다 고치는 게 낫다”면서도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선제적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권이 포퓰리즘에 휘둘려” 공무원 사회서도 회의

관련기사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전형적인 원칙 없는 경제정책이다. 추경은 매년 말 정부가 계획한 이듬해 본예산을 정부 스스로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다. 올해만 놓고 봐도 모두가 지난해보다 경제여건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 정부 재정의 역할을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우선시한다며 사실상 ‘긴축’ 정책을 폈다. 올해 정부의 본예산은 386조4,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0.5%(2015년 추경예산안 대비)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결국 경기가 고꾸라지자 부랴부랴 추경을 편성하며 정책을 선회했다. 그리고 이는 예산안의 완성도도 떨어뜨렸다. 최소 6개월간의 심의 끝에 편성되는 본예산과 달리 추경은 불과 한 달 내 짜여 허점이 많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추경으로 11조원이 편성됐지만 상당 부분 집행되지 않았다.

연말정산 파동도 소신 없는 경제정책이 낳았다. 2013년 연말정산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변환돼 반영된 결과가 나온 지난해 연말정산으로 수백만원을 토해냈다는 비판여론이 커졌다. ‘13월의 보너스’가 ‘13월의 울화통’이 됐다는 사례가 쏟아져나왔고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받아든 결과는 근로소득자의 절반(48.1%, 2014년 기준)이 세금을 내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치다. 미국은 2012년 면세자 비율이 35.8%고 호주는 25%다. 영국은 면세자 산정기준이 우리와 다르지만 3% 내외에 불과하다. 한국의 비상식적인 근소세 면세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으로부터 개편 대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공무원사회에서도 여론 악화의 급한 불만 끄면 된다는 정책기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종시 중앙정부 부처의 한 공무원은 “경제정책은 아니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도 경북 성주의 불만이 커지자 다른 곳을 검토한다고 하는 등 여론이 들끓으면 정부가 정책을 수정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좋게 말하면 고도로 민주화된 사회가 됐다고 볼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정부가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공무원은 “경제논리에 입각하지 않고 여론에 끌려다니는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해를 줄 것”이라며 “정권이 어젠다를 잡고 때로는 뚝심 있게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하지만 부족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익명의 한국경제학회장 출신 대학 교수도 “내년까지 국민들의 불만을 사는 이벤트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대선에 신경 써야 하는 정권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는 사례가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이태규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