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토요와치] 유커 가고 싼커(散客) 뜬다

"뻔한 깃발부대는 싫다"

탐나는 동네 직접 골라

한국 즐기는 지우링허우



중국인의 해외여행 자유화 시행이 20년째로 접어들면서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유커·游客)이 변모하고 있다. ‘깃발부대’로 불렸던 유커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삼삼오오 자유롭게 관광하는 싼커(散客)가 채우고 있는 것이다. 한류를 좋아하고 모바일로 무장한 지우링허우(九零後, 1990년대 출생자)가 싼커의 주역이다. 싼커는 한국과 중국의 정치적 논란도 무색하게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논란에도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더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지난 7월 한달간 방한한 중국인 관광객은 무려 91만명으로 월간 단위로 사상 최고다. 이는 싼커 증가에 따른 것이다. 시장경제가 안정된 후 태어난 이들은 중국 당국의 입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우르르 몰려 다니는 단체여행 줄고


자유로움 즐기는 삼삼오오族 늘어

시간 구애받지 않고 여유있게 쇼핑

지출도 단체여행객보다 19% 많아

◇“깃발은 필요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그동안 유커라고 하면 깃발을 든 가이드를 앞세우고 경복궁이나 명동·면세점 등을 돌아다니는 시끌벅적한 단체패키지 관광객의 모습부터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이 해외여행 자유화 정책을 시행한 것은 1997년부터다. 그전에는 해외여행이 동남아 등지의 가족과 친구 방문으로 제한됐고 이마저 복잡한 절차를 거쳐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이후 1997년 싱가포르와 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 등 4개국을 대상으로 해외여행을 자유화한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단계적으로 늘어난 대상 국가는 지난해 151개국에 이르렀다. 한국은 1998년에 자유화 대상이 됐으니 비교적 이른 시기다.

강산이 두 번 변한 지난 20년간 중국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바뀌었다. 떼거리에서 벗어난 싼커들이 이미 방한 관광객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싼커는 개별 자유여행객(FIT, Foreign Independent tourist)의 중국식 표현이다. 대개 가족이나 친구 등 5인 이하 여행객이 정해진 관광상품이 아닌 자발적 의사로 여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행을 즐기고 싶은 관광객의 욕구는 경제발전에 따라 글로벌 공통이다. 이는 1964년 여행자유화를 시작한 일본이나 1989년에 개시한 한국도 마찬가지로 거쳤던 과정이다. 중국의 경우도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여행조건 개선과 함께 젊은 여행자층 증가, 비자 규제 완화, 해외여행 경험 증가, 단체 패키지 상품에 대한 낮은 만족도 등 복합적 요인을 통해 개별관광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올해 4월30일~5월2일 노동절 연휴기간에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1,234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개별자유여행 56%, 에어텔(항공+호텔) 14%로 전체의 70%가 싼커였다. 단체 패키지는 25%에 그쳤고 3%는 인센티브 등 기업·단체 여행이었다. 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15년 6,0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봐도 개별여행 56.7%, 에어텔 2.4%, 단체여행 40.9%였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관광객 가운데 개별여행 비중이 일본인 92%, 미국인 99%였음을 감안하면 향후에도 싼커 증가는 분명해 보인다.

◇한류 공연 찾아보고 쇼핑도 자유롭게=20~30대 지우링허우를 중심으로 스마트기기로 무장하고 여행을 즐기는 싼커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여행정보 수집을 위해 전통적인 오프라인 여행사보다 모바일 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온라인 여행 커뮤니티도 급속히 확산되며 스마트 여행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 71%가 모바일인터넷을 통해 여행상품과 정보를 검색했고 이 가운데 48%가 실제로 여행상품을 예약하거나 결제했다. 2014년 그 비중이 27%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발전속도다. 전화로 상담하거나 직접 오프라인 여행사를 방문한 비중은 2014년 34%에서 지난해에는 13%로 뚝 떨어졌다. 해외여행을 앞두고 여행 사이트나 웨이보 등 소셜네트워트서비스(SNS)를 검색하는 것은 중국인에게도 상식이 된 셈이다. 여행 가이드북을 한 손에 쥐고 길을 찾는 전통적인 방식이 점차 사라지고 이를 휴대폰 등 스마트 기기가 대신하고 있다.


이런 중국인 관광객의 일반적 상황이 한국 관광시장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방한 자유여행객에게 인기가 있는 한유망(http://www.hanyouwang.com)에서는 이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다. 관심 항목 1위는 와이파이 가능 여부, 2위는 뮤지컬이나 K팝 등 공연장 현황, 3위는 관광지 입장료, 4위는 숙박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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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에 대해 “명품 사냥에만 열광하던 유커들이 한국 문화를 구매하는 ‘경험적 소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014년 공연관광 분야 외국인 관람객 중 중국인이 101만명으로 2012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서울 명동의 ‘난타’ 전용관은 주말이면 중국인들로 북적인다.

관광공사 집계에 따르면 2015년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한 주요 활동은 쇼핑(84.3%), 식도락관광(60.7%), 자연경관 감상(36.1%) 순이며 공연관람·축제참가 비중은 5.3%로 아직 낮은 편이다. 하지만 2010년 공연관람 비중이 0.7%에 그쳤음을 감안하면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싼커들은 특히 관광지출 면에서도 우월하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 개별여행객의 1인당 지출경비는 2,483달러로 단체여행객보다 19.4% 많았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쇼핑 시간과 선택의 자유가 있는 싼커의 경우 백화점을 많이 이용하는 반면 단체관광객은 대체로 면세점 쇼핑에 시간을 많이 보낸



다는 특징이 있었다.

‘명동~경북궁~남대문’ 벗어난 싼커

새로운 한국관광·쇼핑지도 만들어

국내관광업 질적성장 이어가려면

단체여행에만 집중된 정책 바꿔야

◇짜인 일정은 ‘NO’… 그래도 지방은 힘들어=싼커의 확대는 관광지역 다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주로 명동과 동대문·종로 일대에만 집중됐던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2010~2015년 기간의 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서울 남대문시장·인사동 지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의 비중이 감소한 반면 신촌과 홍대 주변, 잠실, 강남역 일대를 찾는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단조로운 ‘명동(동대문)~경복궁~남산’ 코스에서 벗어난 싼커들이 새로운 한국관광 지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싼커들은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 청담동, 가로수길을 비롯해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가 걸었던 카페거리까지 행동반경을 무한 확장하고 있다.

다만 중국인 관광객의 서울과 제주 집중은 여전하다. 서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2010년 91.6%에서 지난해 76.2%로 다소 낮아졌지만 제주는 같은 기간 32.0%에서 32.4%로 오히려 늘어났다. 관광공사 측은 이에 대해 “관광객들이 개별적으로 찾아가기 쉽지 않은 국내 교통정보와 쇼핑에 주력하는 여행일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싼커에 맞춘 정책으로 전환 필요=지난 2010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188만명이었지만 2014년 613만명, 2015년에는 598만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800만명을 예상하고 있다. 1~7월에만 473만명을 기록해 올해 목표달성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싼커가 증가했음에도 지금까지는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정부나 관광업계의 정책이 주로 단체패키지 관광객에 머물렀다. 통제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관광산업이 관광객 숫자만 늘리는 양적 측면에서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 변화와 함께 적용 대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됐다. 싼커들이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서비스를 늘리는 것과 함께 장기적으로 규제 위주의 ‘중국 단체관광객 유치 전담여행사’ 제도를 폐지하고 보다 자유로운 시장환경을 조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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