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사상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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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19일 판문점.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씨는 남한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휠체어에 의지해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가 1952년 빨치산 활동을 한 혐의 등으로 붙잡혀 꼬박 34년간 남한에서 옥살이를 한 것은 전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상범으로 붙잡힌 좌익수는 2년에 한 번씩 있는 전향심사에 전향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감방에서 나올 수 없었다. 1989년 사회안전법이 폐지되면서 전향제도의 법적 근거는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준법서약서라는 이름으로 준법 의지를 시험받아야 했다. 헌법재판소가 2002년 준법서약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도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는 지적은 계속됐고 2003년 마침내 준법서약서까지 폐지됐다.


비록 북한에서 부정당하고 말았다 해도 이씨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양심의 자유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중 하나다. 사람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고 그렇게 내린 판단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아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양심의 자유에 대해 ‘모든 인류가 같은 의견이고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가진다고 해도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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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양심의 자유가 지금 미국에서 위협받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이민자에 대한 특단의 심사(extreme vetting)를 하겠다는 내용의 ‘반(反)테러 대책’을 발표했다. 그는 “냉전 시절 우리는 사상을 검사하는 테스트를 했는데 오늘날 직면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검사 테스트를 개발해야 한다”며 “그것을 ‘특단의 심사’로 부르겠다”고 말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특단의 심사는 대상을 이민 신청자로 제한하지 않고 공무원시험 응시자와 민간회사 입사자로 늘려가고 결국 모든 미국 시민으로 확대할지 모른다. 조지 오웰은 이미 오래전 그런 세상을 예상해 ‘1984년’이라는 소설을 내놓은 바 있다. /한기석 논설위원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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