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그가 사준 맥주는 따스했다

[식담객 신씨의 밥상] 스물한번째 이야기-맥주



1996년 여름, 대한민국 육군 일병 4호봉의 ‘쫄따구’였던 내 인생은 우울했습니다.

제대일이 까마득한 데다가, 군번도 꼬일 대로 꼬였습니다.


20명 정원부대에서 위로 선임병이 16명...

후임병이 다섯 있었지만, 죄다 중대 행정병에 연대장 관사병, 당번병이어서 일을 분담할 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그렇지 않은 청년은 ‘침샘 이상’이란 이상한 질환으로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입원 중이었습니다.

다른 한 분이 계셨는데, 정신세계가 독특해서 후임으로 분류하기 어려웠습니다.

나는 실질적 막내였습니다.

그래도 그런 짜증나는 군 생활을 견디는 데 힘이 돼준 날이 바로 정기외박이었습니다.

불과 48시간짜리 초단기휴가였지만,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집에 가서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잠 한 번 늘어지게 자고 오는 것만으로도, 너끈히 두 달은 버틸 수 있었습니다.

96년 8월, 고대하던 정기외박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정기외박은 금요일 오후에 일과를 마치고 출발하는 2박3일간의 짤막한 휴가였습니다.

그 날은 유격훈련이 있었고 중대 통신병이었던 나는, P77이라는 11kg짜리 대형무전기를 짊어졌습니다.

8월 초순 쏟아지는 뙤약볕에, 온종일 몸엔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게다가 그 며칠 전 탄피회수기 용접을 하다가 화상을 입어 얼굴에 허물이 벗겨지고 눈도 쓰렸습니다.

(*속칭 ‘아다리’라 불리던 안구화상에 대한 대책은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 이틀 끙끙대고 앓다가 근무 복귀하는 게 다였습니다. 그나마도 휴식도 짬밥 안 되는 후임병에겐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ㅠㅠ)

그래도 몇 시간만 버티면 휴가를 나간다는 생각에, 남몰래 ‘씨~익’ 웃으며 버텨냈습니다.

해가 서산에 넘어갈 무렵, 드디어 휴가길에 나섰습니다.

설렘, 환희, 기쁨... 행복했습니다.

2박3일이 지나면 다시 찌글찌글한 쫄따구라이프로 돌아오지만, 좋은 건 좋은 겁니다!

정박일행 중에는 임 병장도 있었습니다.

이등병 때부터 잘 보살펴줬던 옆 중대 선임이었습니다.

풍진으로 의무실에 입실했을 땐 군기 빠졌다고 욕먹는 신병에게 따뜻한 얘기들을 들려줬고, 가끔 마주칠 때면 초코파이나 핫브레이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임 병장 마주치기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마음 속 버팀목이 돼준 이였기에, 항상 고맙게 여겼습니다.

그런 이와 함께 휴가를 나가게 돼, 더욱 흥겨웠습니다.

위병소 앞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며, 임 병장이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담에 술 한 잔 사줄게. 형네 집이 부산이잖아.”

짧은 휴가인 데다가 집도 각각 서울과 부산이었습니다.

군팔(군용88) 한 대에 경례가 휴가 세레모니의 전부였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충~성!”

“형이 술 한 번 꼬~옥 사줄게, 정말 미안타~”

임 병장은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미안하단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돌아서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보일 듯 했습니다.

밤 10시, 서울에 도착해 간만에 편한 잠에 빠졌습니다.

온갖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포근한 이불에 몸을 맡겼습니다.

지하 호프집, 휴가 나온 일행끼리 맥주잔을 부딪칩니다.

맥주 맛이 유난히 짜릿합니다.

그런데 임 병장의 표정이 좀 어둡습니다.

“신대두 일병아, 형 없어도 군 생활 잘하고 항상 건강해야 된다...”

“아따, 임 병장님~ 제대 얼만 안 남았다고 일병 나부랭이 약올리십니까? 술값이나 내십쇼!”

술이 제법 올라 일병이 감히 병장에게 까붑니다.

“술은 형이 산다... 걱정 말고 마셔라...”

임 병장이 조금 달라 보입니다.

탄력 있던 구릿빛 얼굴이 유난히 창백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왁자지껄 즐겁게 술을 마셨습니다.

“자, 잘 마셨습니다. 2차로 소주 어떻습니까~?”

모두들 흥겨워 일어나는데, 임 병장만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먼저들 나가라...”

“아아...임 병장니임, 빨리 나오십시오~!”

밀려오는 갈증에 잠에서 깹니다.


시간은 새벽 1시 30분, 한여름밤의 호프집 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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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푹 자고 일어나서 하루를 실컷 놀고도 하룻밤을 더 잘 수 있습니다.

다시 안도의 잠자리에 듭니다.

휴가는 참 빨리도 지나갑니다.

군 생활이 그만큼 줄었다는 얘기도 되지만, 다시 고된 일상이 기다리는 쫄따구의 복귀길은 두려움 반, 짜증 반입니다.

해질녘 풍겨오는 부대의 잔반 냄새는 처진 어깨를 더욱 짓누릅니다.

“휴가 복귀했습니다, 충성!!!”

그런데 부대 분위기가 좀 이상합니다.

선임들 얼굴에 긴장감이 맴돕니다.

“너 왜 P77(배낭형 대형무전기) 교장에 놓고 갔어!”

아랫사람 갈구는 게 취미인 전 상병이 오자마자 신경질을 냅니다.

“교보재(교육보조재료) 옆에 있어서 챙길 줄 알았습니다.”

“니가 남이 챙겨주는 거 받아먹을 짬밥이야!”

젠장... 하나 있던 꼴통 후임녀석이 무전기를 챙기지 않았답니다.

그 큰 게 안 보였다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무전기는 내 담당이었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너 이 새끼, 내일부터 군기교육이야. 훈련복이랑 식판 챙겨!”

하아~ 돌아오자마자 무슨 날벼락인지...

“따라와....”

바로 윗 고참 일병이 나를 부릅니다.

“상황이 안 좋다, 너랑 같이 휴가 나간 선임 중 하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일병님, 누가 탈영이라도...?”

“아니, 영원히 복귀 못 해... 죽었다.”

순간 머릿속에 임 병장이 떠오릅니다.

12명 휴가자 중 임 병장, 유독 임 병장만 생각납니다.

“임 병장님 얘기하시는 겁니까?”

“누가 벌써 얘기해줬구나...”

임 병장은 부산 가는 기차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해 나이 스물 둘.

93학번이었지만 생일이 빨라 나와 동갑이었던 임 병장은 정말 꽃다운 나이에 시들고 말았습니다.

흉흉해진 분위기에, 내게도 유탄이 튀었습니다.

한동안 갈굼에 시달리며 완전군장 뺑뺑이를 돌았습니다.

인생이 계속해서 꼬인다는 생각에 모든 게 원망스러웠습니다.

잠시 휴식시간, 땀으로 범벅이 돼 맥주 한 모금 마시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되뇌입니다.

불현듯 임 병장의 말이 떠오릅니다.

“형이 술 한 잔 꼬~옥 사줄게!”

임 병장이 건넨 마지막 한 마디였습니다.

이내 그가 건넸던 따뜻한 이야기와 마음이 다시 떠오릅니다.

살벌한 부대 분위기가 임 병장 때문이라고 원망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집니다.

꿈속까지 찾아와 기어이 술 한 잔 사준 임 병장, 정말 그렇게 자기 약속을 지켰던 것 같습니다.

힘들었던 군 생활에 용기와 위로를 준 당신은 좋은 형이었습니다.

벌써 20년이 지났군요.

어디 계시든 행복하세요.

형이 사준 그 맥주, 가슴 속에 따뜻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곡식으로 만든 마실 거리’라고 이해하면 될 듯한데, 문제는 우리나라 맥주가 맛이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세금을 덜 내려고 몰트의 함량을 낮춘 일본의 발포주를 본딴 음료를, 여전히 맥주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는데요.

깊고 풍부한 맛은 옅어지고, 대신 톡 쏘는 맛만 난무합니다.

맥주 업체들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비난한다는 볼멘소리를 하기 전에, 옛날 맥주 맛이나 돌려놓으면 좋겠습니다.

맥주와 함께했던 즐겁고 애틋했던 그 시절이 덩달아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식담객 analogoldman@naver.com

<식담객 신씨는?>

학창시절 개그맨과 작가를 준비하다가 우연치 않게 언론 홍보에 입문, 발칙한 상상과 대담한 도전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어원 풀이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업 알리기에 능통한 15년차 기업홍보 전문가. 한겨레신문에서 직장인 컬럼을 연재했고, 한국경제 ‘金과장 李대리’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PR 전문 매거진 ‘The PR’에서 홍보카툰 ‘ 미스터 홍키호테’의 스토리를 집필 중이며, PR 관련 강연과 기고도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홍보 바닥에서 매운 맛을 본 이들의 이야기 ‘홍보의 辛(초록물고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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