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금융그룹은 국내 금융회사 중 최초로 ‘은퇴’를 연구 테마로 삼은 미래에셋은퇴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중·장년층은 고령화 쇼크에 직면해 있다. 일찍 은퇴해 오랫동안 노후를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됐지만 노후 준비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은퇴 문제 전문가로 꼽히는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소장을 만나 ‘은퇴 후 행복한 삶’의 설계를 위한 조언을 들었다.
당신이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라면 노후 대비는 안녕하신지? 아마도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노후 생활을 위해 모아둔 재산은 넉넉지 않은 반면 살아갈 날은 새털같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100세 시대의 그림자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다 보니 어느덧 은퇴의 문턱에 다다른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 그들은 은퇴 후에도 한가하고 여유롭게 노후를 즐길 만한 상황이 아니다. 우선 자녀 문제가 아직 남았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얼마 후에는 자녀들의 혼사도 치러야 한다. 역시 꽤 큰 목돈이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살뜰하게 뒷바라지를 해준 자녀들이 부모를 부양해준다는 보장도 없다. 그들도 자기 앞가림하기 바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덜컥 병에 걸리거나 사고라도 난다면 예기치 못한 비용이 크게 발생한다. 변변찮은 연금과 쥐꼬리만한 예금이자로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베이비부머들의 노후가 가시밭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저출산과 기대수명 증가가 교차하면서 빚어내는 노인들의 나라가 초고령사회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1.2명 선이고 기대수명은 82.3세로 세계 11위다. 이웃나라 일본은 이미 2006년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초저금리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1.25%로 내렸다. 사상 최저 수준이다. 통상적으로 금리가 1% 언저리가 되면 초저금리로 본다.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지고 물가상승률도 낮아지면서 초저금리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은행에 예금을 넣어두더라도 자산증식이 사실상 멈추게 된다.
초저금리·초고령사회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듯이, 다른 세계에 가면 다른 방식으로 적응해나가야 한다. 최근 김경록 소장은 초저금리· 초고령사회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지혜로운 노후 대비책을 제시하는 ‘1인1기(1人1技)’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당신의 노후를 바꾸는 기적’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의 주제를 요약하면, 은퇴자들이 쓸만한 기술을 한 가지씩 익혀 노후에도 자기만의 일을 하며 사는 게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젊어서부터 평생 일했는데, 나이 먹어서도 또 일을 해야 하나? 이런 반응부터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측면이다. 더욱이 초저금리·초고령사회에서 일의 가치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월 100만원 일자리가 금융자산 12억원과 대등
김경록 소장이 말한다. “초저금리·초고령사회에서는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일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금리가 연 1%라고 할 때 매달 100만원의 이자를 받으려면 12억원을 은행에 넣어둬야 합니다. 1억원 정도의 예금만 넣어둬도 매달 100만원가량 이자를 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꿈만 같은 이야기죠. 그런데 매달 100만원 정도의 근로소득을 얻는다고 칩시다. 월 소득 100만원의 일자리는 언뜻 하찮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일하지 않는 은퇴자의 금융자산 12억원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초저금리·초고령사회를 맞아 노후에 일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물론 가장 기본적인 노후 대비책은 연금이다. 특히 연금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 변액연금·월(月)지급식 펀드 등으로 가급적 층층이 쌓아둘수록 더 좋다. 쉽게 말해 노후 생활의 안전판이 두터워지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앞서 말한 ‘5층 연금 구조’를 권장하고 있다. 미래에셋금융그룹 계열사들도 다양한 연금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경록 소장은 “국민연금을 제외한 사적 연금상품은 개인들의 선택 여하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된다”며 “초저금리 시대에 수익률을 좀 더 높이려면 확정금리형 상품보다는 투자형 상품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투자를 잘하는 금융회사를 선택하는 동시에 자산관리 전문가에게 수시로 조언을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노후에는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연금으로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소득을 확보했다면, 일을 통해 추가적인 소득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경록 소장은 이를 ‘반(半)연금·반(半)기술’ 전략이라고 부른다. 그의 책 제목인 ‘1인1기’도 반연금·반기술 전략과 직접적으로 맥락이 닿아 있다. 반연금·반기술 전략은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면서 추가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이다. 즉 ‘노후파산’을 막는 동시에 풍요로운 노후를 가능하게 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장년층이 익힐 수 있는 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또 노후에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김경록 소장이 ‘1인1기’에서 말하는 기술은 손재주가 필요한 수공(手工) 기술과 전문 지식을 주로 의미한다. 큰돈이 들거나 거창한 기술은 아니니까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김 소장이 말한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들은 교육수준이 높은 데다 경험도 풍부하고 똑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고령자 취업 시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청소, 관리, 공공근로 등의 단순 직무보다 훨씬 더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죠. 하지만 눈높이와 기대수준을 좀 낮추면 일거리를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노후에 가질 기술의 4가지 기준
김경록 소장의 저서 ‘1인1기’에는 은퇴자가 노후에 가질 기술의 4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혼자 설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자립적인 기술을 의미한다. 가령 직장에서 오랫동안 인사나 재무 업무를 담당해 그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인사나 재무에 밝다고 하지만, 사실 그의 노하우는 회사라는 조직을 떠나서는 써먹을 곳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기술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둘째,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나이 든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의향을 일으키려면 뭔가 확실한 가치를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셋째,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기술 습득의 목적이 소득 창출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다. 넷째,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
김 소장이 말한다. “중·장년층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려고 나설 때는 본인의 적성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또 중요한 것이 시장성입니다. 돈을 벌려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노후에 하는 일까지 재미가 없으면 되겠습니까(웃음).”
김 소장은 은퇴 전후 5년간이 은퇴 후의 삶을 결정하는 ‘골든타임’이라고 말한다. 특히 은퇴를 앞둔 몇 년이 아주 중요하다. 이 시기에 금융자산 축적은 물론 인적자본 투자도 해야 한다. 인적자본 투자는 노후에 써먹을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체 생애로 봤을 때 인적자본 투자가 시기별로 지나친 불균형을 보입니다. 대부분 투자가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기까지 집중된다는 겁니다. 이제는 통념을 깨야 합니다.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려면 40~50대에 인적자본에 대한 재투자를 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진 인적자본의 가치는 은퇴 시점에 다가갈수록 서서히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퇴를 앞둔 사람들은 ‘고3’ 때의 심정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기술을 익혀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과학기술 발달, 가치관과 소비성향 다양화, 서비스 시장 확대 등으로 고령자들이 전문성과 기술만 갖춘다면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을 하기에 우호적인 환경이 열리고 있다. 특히 디지털·모바일 혁명과 네트워크 사회 도래로 ‘1인 기업’도 가능해진 시대다. 또 틈새시장이 많아지다 보니 개인들이 창업을 넘어 아예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창직(創職)’도 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고령인구 증가로 시니어 산업이 급팽창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일손을 놓으면 더 빨리 늙는다는 말도 있다. 사람은 일을 통해 소득 외에도 존재의 이유와 삶의 활력을 얻는다. 노후에 일을 한다는 것이 단지 재무적 이유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위해서라도 일하는 게 더 바람직한 셈이다.
김경록 소장은 말한다. “80~90세까지 건강하게 살면서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으면 그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노후에 일을 하면 사회적 관계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에 대한 몰입이 건강을 가져옵니다. 지금부터 1인1기를 익혀 행복한 노후에 대비하세요. 1인1기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입니다. 또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코칭을 받으세요. 시대에 맞게 모바일 역량도 길러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내기를 바랍니다.”
김경록 소장이 말하는 ‘노후 투자전략 3계명’
노후에는 젊을 때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자산관리를 해야 한다. 한번 삐끗하면 회복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맞아 노후가 길어진 만큼 어느 정도 자산증식 노력도 필요하다. 노후의 투자전략은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김경록 소장은 “3가지만큼은 꼭 명심하라”고 조언한다. 첫째, 수명이 길어진 만큼 ‘돈의 수명’도 길게 하라고 권유했다. 즉 단기적인 성격을 띠는 예금보다는 주식, 채권, 부동산, 인프라 등에 ‘장기적인 투자’를 권하는 것이다.
둘째, 전체 자산의 절반 가량은 ‘글로벌 자산’으로 보유하는 게 바람직하다. 요컨대 글로벌 분산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셋째, ‘현금 흐름’이 있는 자산을 보유해야 한다. 중간중간에 배당이나 이자를 주는 자산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김경록 소장은…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소장은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장기신용은행 장은경제연구소 경제실장을 거쳐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운용 최고책임자, 미래에셋캐피탈 대표이사, 미래에셋자산운용 경영관리부문 대표를 역임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윤현 기자 unyon@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