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내 서열 2위로 체제 선전을 담당하던 고위 외교관인 태영호(55) 공사가 가족과 함께 최근 한국에 들어왔다고 통일부가 17일 발표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부인, 자녀와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면서 “이들은 현재 정부의 보호하에 있으며 유관기관은 통상적 절차에 따라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태 공사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현학봉 대사에 이은 서열 2위”라며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에서 최고위급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북한대사관 내 서열 2위에 해당하는 고위급 외교관의 탈북은 매우 이례적이다. 정 대변인은 태 공사의 입국 경로에 대해서는 “상세한 탈북 및 입국 경로에 대해서는 관련 해당국과의 외교 문제가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상세히 밝히지 못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태 공사는 제3국을 경유하지 않고 영국에서 한국으로 바로 입국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태 공사의 탈북 동기는 ‘북한 체제에 대한 절망’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 대변인은 “(태 공사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탈북 동기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관계기관 조사를 마친 후에 유관기관 협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영국 BBC와 가디언 등은 16일(현지시간) 태 공사가 가족과 함께 10년 동안 영국에 거주해 왔고, 이들은 올여름 평양으로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몇 주 전 런던 서부에 있는 집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전한 바 있다.
태 공사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 고위 간부 자녀들과 함께 중국에서 유학하면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으며 귀국해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한 뒤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고 당시 탈북 외교관들이 언급했다. 덴마크어 1호 양성통역(김정일 총비서 전담통역 후보)으로 뽑혀 덴마크에서 유학했으며 1993년부터 덴마크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태 공사는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바로 귀국해 유럽연합(EU) 담당 과장이 됐다. 2001년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EU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 외교 무대에 진출했다.
한편 태 공사의 부인 오혜선씨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인 오백룡의 집안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일성의 대표적인 동료로 꼽히는 오백룡은 당 정치국원과 호위사령관, 당 중앙군사위원 등 요직을 거친 인물로 1984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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