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전기 도둑



디프티 카카르·파하드 무스타파 감독의 2014년 작 다큐멘터리 영화 ‘카티야바즈(Katiyabaaz )’는 인도의 대도시 칸푸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카메라는 빈민가에서 만난 ‘로하’라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의 직업은 ‘카티야바즈’, 우리말로 하면 ‘전기도둑’이다. 사회 통념상 분명 범법자지만 칸푸르에서만큼은 영웅이다. 전기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직접 전봇대에 올라가 전선에 쇠갈고리를 달고 전기선을 끌어오기 때문. 선거 때는 전기 부족 해결 공약을 내걸다가도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먼지처럼 사라지는 정치인에게 분노한 주민들을 전기도둑이 달래고 있는 셈이다.


전기도둑은 양극화가 심할수록 기승을 부린다. 사회 안전망 붕괴로 전력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세계 10대 불평등 국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인도가 지난해 불법 전기 도용으로 162억달러(약 18조2,000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이나 비슷한 수준의 브라질과 러시아에서 각각 105억달러와 51억달러어치의 전력을 도둑맞은 것도 비슷한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당 말기인 1959년에 극성을 부렸다. 전 국민의 85%가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던 시절, 서민들은 빛을 얻기 위해 전기를 훔쳤고 부유층들은 전기료를 덜 내기 위해 양옥이나 일본식 주택의 어두운 구석방에 달린 계량기를 조작했다. ‘범죄는 어둠에서 일어난다’는 표현이 곳곳에서 회자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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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연일 맹위를 떨치는 올해 전기도둑이 유난히 많이 늘었다는 소식이다. 올 상반기 농사용·산업용 전기를 불법적으로 사용하다 걸린 사례는 4,880건에 달해 지난해 전체 건수에 거의 육박했다. 한국전력에서는 부인하고 있으나 무더위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 우려가 커지자 계기판 조작, 전기 빼내기 등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쯤 되면 전기료 누진제가 국민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인도처럼 전기도둑을 홍길동처럼 만들지는 말아야 할 텐데. /송영규 기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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