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로 파운드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가 같아지는 ‘패리티’가 사실상 현실화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런던 일부 지역에서 파운드와 유로가 등가에 거래되는 현상이 종종 발견된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곳이 런던 스탠스테드공항과 루턴공항 인근 환전소다. 스탠스테드공항에서는 수수료를 감안한 1유로 매입가가 97펜스(0.97파운드)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 공항 환전소는 ‘대낮의 도둑’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환전조건이 좋지 않은 곳으로 유명하지만 블룸버그는 파운드·유로 패리티의 전조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루턴공항 환전소는 한때 1유로 매입가가 101펜스로 패리티를 넘어 아예 파운드화 가치가 유로화를 밑도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 가치도 급전직하하고 있다. 최근 테리사 메이 총리가 내년 4월 이전에 유럽연합(EU)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파운드화 가치 하락에 가속도가 붙어 기준환율이 1유로당 90펜스에 근접했으며 수수료를 더한 매입환율은 95펜스를 넘나들고 있다. 파운드·유로 기준환율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유로당 98.03펜스로 패리티에 가장 근접했었다.
통신은 파운드·유로 패리티가 도매환전 시장에서는 이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패리티의 고통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은 유럽으로 여행이나 출장을 가는 영국인 여행자들이다. 과거에는 70~80펜스를 1유로로 바꿀 수 있었지만 지금은 최소 95펜스 이상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 여행자 입장에서는 브렉시트 결정으로 유럽 여행 비용이 20~30% 가까이 오른 셈이다.
평소 같으면 유로화에 대한 파운드화 가치 하락은 영국 수출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과 유럽 간 무역장벽이 세워지면서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절반은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통신은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는 5.4%에 달한다”면서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이 적자를 메우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파운드화에 대한 공격(투매)을 유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영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을 만끽하고 있다. 가디언지는 이날 면세점 운영사인 글로벌블루의 지난달 매출이 전년 대비 7%가량 늘어나는 특수를 누렸다고 보도했다. 글로벌블루 측은 “아시아와 미국 여행객들의 씀씀이가 특히 커졌다”고 밝혔다.
유럽 최대 은행인 HSBC는 올해 안에 파운드·유로 기준환율이 패리티에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1파운드당 1.3달러 안팎인 달러·파운드 환율도 연말에는 1.1달러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HSBC 외환전략가 도라 메이허는 “파운드·유로 패리티는 영국에 대한 투자 매력도를 높이겠지만 유럽을 오가는 영국인들의 부담은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