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경제정책 길을 잃다] 추경 밀리고, 구조조정 멈추고...2000년 여소야대 판박이

정부의 경제정책이 추진에 제동이 걸린 현 상황이 16년 전인 지난 2000년 여소야대 때와 판박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시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은 3개월이나 국회에 계류된 끝에 통과됐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강력하게 추진되던 기업·금융 구조조정도 추동력이 떨어졌다.

일단 김대중(DJ) 정부 때인 2000년 4·13 총선에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133석,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을 차지했고 총선 직전 민주당과 결별을 선언해 중립으로 평가받던 자유민주당(자민당)은 17석을 얻어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됐다.

이에 추경안부터 불똥을 맞았다. 정부는 2000년 6월 29일 2조 4,000억원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3개월이 넘는 정쟁 끝에 10월 12일에야 소폭 삭감된 2조 3,000억원 규모로 통과됐다. 이듬해도 6월 25일 정부가 5조 555억원의 1차 추경안을 제출했지만 국회 통과는 9월 3일로 71일이나 걸렸다. 2001년 10월 23일에는 2차 추경안을 제출했고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1조 6,000억원) 등으로 11월 5일 통과됐다. 올해 정부 추경안은 지난달 26일 국회에 제출됐으며 약 한 달 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여소야대의 꽉 막힌 정국을 뚫기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 패배 후 11일 만인 4월 24일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와 전격 영수회담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국정안정을 위해 여야가 건설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총선에서 양당이 내놓은 공약 중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여야 정책협의체를 만들어 조속히 이행하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5월 신임 총리로 이한동 자민당 총재가 지명되자 한나라당이 극렬히 반발하며 소통창구였던 정책협의체가 중단됐다. 10월 영수회담이 열려 2개월 마다 영수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지만 12월 한나라당이 검찰 총장 등 검찰 수뇌부 탄핵 소추안을 제출하며 정국은 급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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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금융 구조조정, 예산안 등도 줄줄이 제동이 걸렸다. 2000년 6월 국회에 제출된 금융지주회사법 등은 외환위기 여진으로 한시가 급할 때였지만 10월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특히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조세감면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이 통과되지 않아 대우와 대우중공업간 회사 분할도 지연됐다. 이외에 2001년 말에는 금융 구조조정의 핵심 법안인 예금보험기금채권(예보채) 보증동의안 처리가 이듬해로 미뤄져 정부는 금융구조조정에 있어 손발이 묶였다. 환란 이후 한국경제의 노력에 칭찬을 보냈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도 2001년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더딘 구조조정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힐 정도였다.

2000년 말 이듬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도 1963년 헌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하지 못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당시 예산안은 법정 처리 기한인 12월 2일을 넘어 정기국회 회기(8일)도 넘겼으며 12월 25일에야 통과됐다. 정치리스크가 부각되며 외국인의 자금 이탈도 발생했다. 총선 직전인 2000년 3월 코스피에서 3조 7,00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외국인은 4월 총선 때 198억원 순매수에 그쳤으며 9월에는 1조원 순유출을 기록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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