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는 단순히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고 미술뿐 아니라 건축·디자인·공연·이벤트가 공존하는 곳이었기에 지난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화사와 일정 부분 맞닿아 있습니다.”
1995년 ‘싹’이라는 제목으로 개관에 앞선 전초전 형식의 기획전을 연 김선정(51·사진) 아트선재센터 관장이 미술관의 지난 20여년을 이같이 회고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여사가 요절한 장남 김선재씨를 기리는 뜻을 담아 이름 붙인 아트선재센터는 경주 소재 선재미술관에 이어 1998년 서울 북촌에 개관했다. IMF 외환위기와 대우그룹 해체에도 꿋꿋이 기획전을 계속해온 이곳은 2005년 보수공사에 이어 지난해 겨울부터 전시장 리노베이션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을 뿐이다. 올해 초 어머니로부터 조용히 관장 자리를 물려받은 김 관장은 24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오는 27일부터 11월20일까지 열리는 재개관전 ‘커넥트1:스틸액츠’를 소개했다.
김 관장은 “이번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기획된 것”이라며 “이불·정서영·김소라 등이 과거 아트선재에서 선보인 개인전을 재해석해 보여줌으로써 과거를 현재화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트선재센터는 소장품보다 기획전시에 전념하는 방식으로 운영됐음에도 시간이 흐르며 소장품이 늘어났고 이를 정리하는 계기도 됐다”고 덧붙였다. 전시장 3층에서는 수산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꼬릿한’ 냄새가 관람 동선을 이끈다. 1998년 아트선재센터의 첫 번째 개인전 ‘이불’에서 이불의 대표작 ‘사이보그’와 함께 선보인 생선 설치작품 ‘장엄한 광채’다. 비닐 팩 안에 얌전하게 뉘어 화려한 비즈 장식을 얹은 조기 아흔여덟 마리가 벽면 한쪽을 채웠다. 김 관장은 “생선이 상해가는 과정이 작업의 일부라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프로젝트 갤러리에 전시됐다가 철거되기도 한 작업으로 1997년 이래 처음으로 미술관에서 관람객과 만나게 됐다”며 “쉽게 변하는 재료인 생선을 사용해 조각이 갖는 재료의 한계를 넘어섰고 생선 위에 얹힌 비즈 장식은 한국 여성의 노동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전시 관객과 소장품이 축적된 것 못지않게 김 관장의 이력과 영향력도 커졌다.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김 관장은 전시기획자로 아트선재센터와 함께 커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커미셔너, 2010년 미디어시티서울 비엔날레 전시 총감독, 2012년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 등으로 주요 전시를 이끈 그는 지난해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개관에도 힘을 쏟았다.
김 관장은 “매 기획전 때마다 제작된 작업의 일부로 소장품이 구성됐기에 동시대 한국 미술을 이끈 주요 작가들과 프로덕션을 진행해왔다는 점이 뿌듯하다”며 “이번 재개관 후 일회성 전시가 아닌 미술관 컬렉션과 과거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공공과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명실상부한 한국 현대미술의 생산지이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서기 전부터 ‘북촌 미술거리’의 맹주였던 아트선재센터답게 재개관전은 흥미진진하다. 2000년 정서영의 개인전을 재구성한 2층 전시에 대해 김 관장은 “1990년대 효율성을 앞세운 한국의 경제 성장 속에서 전통적인 돌과 나무 조각을 탈피해 공사장 부산물을 재료로 이용하기 시작한 작가 중 하나가 정서영”이라며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등장한 수위실 등의 이질적인 공간 등 시대성을 반영한 작업들”이라고 설명했다.
1층에는 김소라가 100명에게 편지를 보내 기증받은 91권의 책이 꽂힌 책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빈 듯하지만 매일 매시간 달리 펼쳐지는 퍼포먼스와 관객의 참여가 여백을 채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술관의 리모델링 공사는 내년 4월께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관객은 그 과정까지도 함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