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오토바이. 어느 게 먼저 세상에 등장했을까. ‘내연기관 장착’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오토바이가 먼저 나왔다. 가솔린 엔진을 단 오토바이가 최초로 선보인 시기는 1885년. 독일의 고트리프 다임러(당시 51세)가 8월29일 특허를 얻었다. 그해 11월 중순에는 3㎞를 달렸다. 내연 기관을 얹은 최초의 자동차로 꼽히는 카를 벤츠의 자동차 발명(특허는 1886년, 시운전은 1888년)보다 앞섰다.
라이트바겐(Reitwagen)으로 이름 붙여진 이 오토바이의 원형은 바퀴마저 나무로 만들어진 목제 자전거. 1기통, 배기량 264㏄, 0.5마력짜리 엔진을 단 최초의 오토바이는 최고 시속이 16㎞에 불과했지만 ‘이륜차 시대’를 활짝 열었다. 주행 안정성 확보를 위해 유아용 네발 자전거처럼 뒷바퀴에 작은 보조 바퀴를 달았을 뿐 안장과 핸들 등 전체적인 외형도 오늘날 모터사이클과 닮은 꼴이다.
자동차 제작자로도 유명한 다임러가 오토바이 발명가로 남게 된 비결은 내연기관. 1860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자전거에 증기기관을 장착한 모델을 선보였으나 부피가 크고 안전성이 떨어졌다. 1881년에는 알콜을 연료로 사용하는 소형 증기기관을 장착해 시속 20㎞로 달릴 수 있는 자전거가 등장했지만 상품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초기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컸던 중상류층들은 폭발 위험성이 큰 소형 증기기관을 꺼렸다.
다임러가 선보인 최초의 오토바이 ‘라이트바겐’ 역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혁신적 아이디어는 국경과 바다를 넘었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오토바이 개발에 나섰다. 1900년 들어서는 독일과 영국, 미국의 자전거 메이커들이 고출력 엔진과 영국인 던롭이 개발한 공기 타이어, 다이아몬드형 뼈대(frame)를 갖춘 오토바이들을 쏟아냈다. 연간 500대 정도로 시작된 생산량도 연간 수만대 수준으로 늘어났다. 규모가 큰 자전거포들은 거대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하기 전에 오토바이 대량 생산이라는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거쳤다.
막 형성되던 오토바이 시장에 폭발적 성장의 계기를 안겨 준 것은 전쟁.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말을 대체할 운송 및 이동 수단으로 각광 받았다. 민간에서도 전쟁 초기 군에 징발된 말 대신 오토바이를 사용하는 수요가 늘어났다. 오토바이의 성능은 전쟁을 거치며 크게 개선됐다. 1937년에는 미국에서 할리 데이비슨사의 1,000㏄급 모델을 개조한 오토바이가 시속 219㎞를 넘는 신기록을 세웠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도 각국의 고출력 오토바이들은 사막과 정글, 동토에서 전령 뿐 아니라 수색과 위력 정찰을 위한 표준 장비로 자리 잡았다.
전쟁 후에는 보다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1946년 이탈리아 디자이너 피아지오가 선보인 ‘베스파’는 간단한 외형과 최소한의 성능이었어도 값싼 도시형 바이크로 인기를 끌었다. 저출력 바이크와 함께 배기량 50㏄ 이하 스쿠터 역시 전세계로 퍼졌다. 스쿠터는 구조가 간단하고 정밀한 기술 없이도 제작할 수 있어 제 3세계 국가에서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 주요 도시에서 출퇴근 시간마다 스쿠터와 오토바이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선 요즘도 오토바이 산업은 특유의 엔진 소음만큼이나 요란하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오토바이 산업은 요즘도 6~9%의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최대 생산국은 중국. 전세계에서 팔려나가는 125㏄급 이하 오토바이의 절반 이상이 중국제다.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세계 4대 오토바이 시장은 여전히 급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는 판매대수 기준으로 세계 수요의 84%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에도 세계 오토바이 시장은 8.7% 성장해 1억 3,450대가 팔릴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901억 달러 규모인 오토바이의 세계시장은 성장세를 지속하며 오는 2016년에는 1,2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문제는 커지는 파이에 국내 오토바이 산업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점. 국내시장에서조차 경쟁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중저가 제품은 중국산에 밀리고, 고급제품은 일본과 미국, 독일제의 성능에 못 미치는 탓이다.
국내 수요도 축소 일로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32만6,000대를 기록했던 국내 오토바이 판매는 2015년 8만117대로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국내 두 개뿐인 완성 오토바이 메이커 가운데 2위사의 내수 판매가 일본계 회사보다 낮아져 시장 점유율 3위로 밀려났다. 그나마 가격이 비싼 고급형은 외국제 일색이다. 경기 불황에 따라 소비가 줄면서 저가 오토바이 판매는 줄어든 반면 주 5일제 확산에 따라 고가 레저용 대형 오토바이 판매는 급증세다. 서민이 주로 생계형으로 쓰는 100cc 이하는 2013년 107만9,882대에서 2015년 104만5,273대로 감소한 반면 260cc 이상은 5만4,455대에서 6만5,432대로 약 20%나 크게 늘어났다.
모터사이클, 오토바이는 단순한 탈 것, 배달용 수단이 아니다. 미국은 전동칫솔 정도로 소음을 줄인 스텔스 오토바이를 개발, 전선에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오토바이의 핵심 부품인 소형 엔진 기술의 쓰임새는 무한대다. 설상 썰매와 수상 보트는 물론 견마형 로봇 등 차세대 운송수단에도 활용될 수 있다. 세계시장은 여전히 커 나가고, 기술 개발 속도 역시 빨라지건만 한국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국이 경제 개발에 나선 이래 특정 품목에서 이렇듯 무력하게 물러난 적이 있던가. 미래의 시장과 기술을 포기하고 미래를 개척한 국가는 없다. 시장은 중저가 중국산 제품에 밀리고 토종 업체의 기술력은 떨어지는 판.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많이 갖고 배운 이들은 외국제 고가 오토바이에 몸을 싣는 현실에서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한국 제조업의 다른 분야는 온전한가.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