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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고 그린 '신체드로잉'...그리면서 지운 '달팽이 그림'...행위예술 거장을 만나다

이건용 작가 '이벤트-로지컬'전

1970년대 전성기 작품 집중조명

이건용 ‘신체드로잉 76-1-78-2’ 나무 위에 유성마커로 그린 1978년작, 168.5x91.3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이건용 ‘신체드로잉 76-1-78-2’ 나무 위에 유성마커로 그린 1978년작, 168.5x91.3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보지 않고 그림을 그려 보자. 그렇다고 ‘눈감고도 그린다’는 식의 접근은 경솔하다. 작가 이건용(74)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이 허용하는 것과 인지의 관계를 알고 싶었다. 그리하여 작가는 화판 ‘뒤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자신의 키와 비슷한 170㎝ 높이 나무판을 세운 뒤 그 뒤에 붙어 서서 화판 위로 손을 넘겨 그림을 그렸다. 안간힘을 써야 했다. 관절의 꺾이는 각도가 결코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그림이 그려진 윗부분을 톱으로 잘라내고 다시 화판 뒤에 붙어서 그림을 그렸다. 낮아졌음에도 역시나 쉽지 않았다. 목 높이의 화판 너머로 손을 뻗어 그릴 수 있는 영역에도 ‘한계’가 있었다. 또 나무판을 잘라낸 다음 허리높이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신체’는 허용된 범위에서만 그릴 수 있었고 정강이 높이의 화판을 향해 허리 숙여 그리는 것 또한 어려웠다. 이들 나무판을 다시 이어붙인 작품이 바로 ‘신체 드로잉’ 연작이다.

이른바 ‘아방가르드’라 불리는 1970년대 한국 전위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이건용의 1975~1979년 작업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개인전 ‘이벤트-로지컬’이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30일 개막해 오는 10월 16일까지 열린다. 전시제목 ‘이벤트 로지컬’은 작가가 자신의 행위예술을 부르는 말이다. 행위가 예술로 직결되는 것은 공연이지만 미술 분야에서는 회화·조각 같은 작품이 아닌 미술가의 신체를 이용하는 것을 행위예술로 칭하는데, 1950년대 말 ‘해프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이벤트’로도 불렸고 요즘은 ‘퍼포먼스’로 통용된다. 이건용도 처음에는 자신의 행위미술을 이벤트라 불렀으나 “쉽게 분노하고 감정을 앞세우던 1970년대 한국사회의 비논리적·전근대적인 태도와 행동들에 대한 일종의 처방”으로 ‘논리’를 뒤에 붙였다.

이건용 ‘신체드로잉 76-3’ 종이에 연필로 그린 1976작, 109.5x157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이건용 ‘신체드로잉 76-3’ 종이에 연필로 그린 1976작, 109.5x157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


현재의 입장에서는 ‘철 지난 옛날 작업’이라 여겨질 수 있음에도 작가의 전성기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흥미롭다. 멀리서 보면 하트모양인 ‘신체드로잉’의 경우 벽에 모(方)로 선 다음 벽에 붙은 쪽 팔을 힘껏 뻗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선을 긋고, 다시 반대로 몸을 돌려 ‘보지 않은 채’ 팔을 뻗어 그린 선의 결과물이다. “오늘 당장 집에 가서 따라 그려보라”고 권하는 작가는 “용기가 없어 못했을 뿐 누구라도 그릴 수 있는 사랑의 기호”라고 말한다. 몸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지점에서 ‘인류애’를 발견한 셈이다.


작가의 대표작은 1979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달팽이 걸음’이다. 개막 행사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백묵으로 바닥에 반복적으로 선을 그으며 조금씩 걸었더니 손으로 그리고 발로 지워가는 역설적 작업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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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실험과 탐구정신이 여전한 작가는 예순 넘으면서부터 빠지기 시작한 자신의 머리카락과 자신이 씹다 뱉은 껌을 6년째 모으며 신작을 준비 중이다.

갤러리현대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을 재조명하고자 지난 5월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 뉴욕에서 이건용의 작품을 처음 선보였고 판매도 성사시켰다. 20여 점의 퍼포먼스 관련 드로잉과 사진들이 전시됐고 대규모 설치작품도 재제작해 선보였다. (02)2287-3500



이건용 ‘신체드로잉 76-2’의 사진 기록물 /사진제공=갤러리현대이건용 ‘신체드로잉 76-2’의 사진 기록물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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