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핫이슈] 선친 조중훈 회장 '해운왕' 꿈 이루려했는데…오일쇼크 파고도 넘었던 39년 역사 종지부

한진해운 법정관리…망연자실한 조양호

무보수 경영·1조 쏟아 부었지만

한진해운 경영정상화 끝내 실패

계열사 전반 위기 확산 우려에

더 지원하고 싶어도 못해 심란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지난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항에서 한진해운터미널 준공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진그룹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지난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항에서 한진해운터미널 준공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진그룹


‘해운왕’을 꿈꿨던 소년은 지난 1945년 인천에서 트럭 한 대로 한진상사를 시작했다. 그 이후 베트남전쟁에서 수송 사업을 펼치던 그는 해운업에 눈을 뜨고 한진해운의 전신인 1967년 대진해운을 세운다. 1973년 오일쇼크로 대진해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4년 후 한진해운을 통해 해운왕의 꿈에 재도전했다.

한 소년의 꿈이자 국내 해운사의 시작을 함께했던 한진해운이 사실상 법정관리(기업회생정차) 수순을 밟게 되면서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외치던 한진그룹에 아픈 상처가 생겼다.


선친인 고(故) 조중훈 창업주가 세운 한진그룹이 창립 70주년을 갓 넘긴 시점에서 2대째 이어온 꿈이 좌절되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침통할 수밖에 없다.

‘운명의 날’로 불린 30일 조 회장은 전날과 다르게 서울 강서구 공항동 본사로 출근했다.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다.

소년 시절부터 ‘해운왕’을 꿈꿨던 조중훈 창업주가 설립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눈앞에 둔 조 회장은 심란할 수밖에 없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육·해·공을 아우르는 글로벌 종합 물류기업을 이끌어 한진의 경영철학을 이어가려던 조 회장이 느낄 괴로움은 상당하다”고 전했다.

채권단이 추가지원을 포기하자 한진그룹은 즉각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으며 해외 채권자와 선주사들의 협조까지 힘들게 이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지원 불가 결정이 내려져 안타깝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룹의 공식 입장이자 평소 조 회장이 밝혀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양호 한진 회장이 지난 6월 인천 영종도 운북지구에 대한항공의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기엔진테스트 센터 오픈식에 참석해 참석자들에게 직접 보잉777 엔진의 테스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경제DB조양호 한진 회장이 지난 6월 인천 영종도 운북지구에 대한항공의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기엔진테스트 센터 오픈식에 참석해 참석자들에게 직접 보잉777 엔진의 테스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한) 대주주와 오너로서의 책임 있는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본다”며 추가 지원은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회장과 가장 큰 입장 차이를 보인 부분이다. 조 회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진해운에) 투자를 할 만큼 했는데 또 무슨 투자를 하냐. 어떻게 하란 말인지…”라며 정부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조 회장은 2014년 어려움에 빠진 한진해운을 인수한 후 ‘할 만큼’ 했다. 한진해운을 살리는 데 쏟아부은 돈만 1조원을 넘는다. 대한항공 등 그룹 계열사들 사이에서는 해운을 살리기 위해 다른 계열사들이 과도하게 희생을 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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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회장 스스로는 회사 정상화를 위해 대표이사에 오른 후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는 등 회사 정상화를 위해 힘썼지만 대한항공의 주가는 한진해운에 발목이 잡혀 내리막길을 걸었다. 업계 관계자는 “사재출연에 대한 압박이 있었지만 동생 고(故) 조수호 회장이 2002년부터 독자경영 해온 한진해운이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불황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어려움에 빠지자 서슴없이 회사를 떠안았다”며 “한진해운에 더 투자하고 싶어도 그룹 전체가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조 회장을 크게 압박했을 것”이라고 했다.

조 회장은 해운사을 잃은 아픔을 뒤로 한 채 대한항공 등 남은 계열사 경영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전면에서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던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당장은 법정관리에 따라 대한항공 역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현실화하면 대한항공 손실액은 △ 한진해운 잔여지분 손상차손 4,448억원 △신종자본증권 손상차손 2,200억원 △영구 EB TRS 차액정산 1,571억원 등 모두 8,219억원에 달한다. 한진해운이 상장폐지돼 주식이 휴지 조각으로 전락하면 대한항공은 보유지분에서 1,634억원의 추가손실이 날 수 있다.

하지만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적어도 추가 지원에 대한 부담은 사라진다. 당장 한진그룹은 지난 25일 제출한 자구안에서 대한항공 유상증자로 올해 12월과 내년 7월 총 4,000억원을 한진해운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진해운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자 주식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대한항공의 주가는 전날 대비 7%포인트나 오르면서 상승세를 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맞이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요인이 있다”면서 “그룹 차원에서 해운 산업의 재활을 위해 그룹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항공 등 남은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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