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워드(Mary Ward). 천수를 누렸다면 퀴리 부인만큼 이름을 날렸을 여성 과학자이자 문필가다.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을 못 받았으나 집에는 한 수 배우려는 대학 교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재야의 초고수인 메리가 천문학과 곤충학에서 재능을 펼칠 수 있던 배경은 집안의 재력. 사촌이자 당대 최고의 천문학 관측 시설을 갖춘 3대 로제 백작 윌리엄 파슨스 덕분에 마음껏 우주를 관측할 수 있었다.
천체 뿐 아니라 현미경을 통해 바라보는 미시의 세계도 그의 관심사였다. 현미경으로 곤충과 식물을 관찰해 손으로 직접 그린 화보첩 ‘현미경 세계’는 예상을 뒤엎고 발간 수주 만에 매진돼 현미경 관찰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곤충학과 식물학, 세포학의 지평을 넓혔다. 31세때 저작인 이 책은 8번이나 인쇄를 거듭하는 기록을 세웠다. 천문학 입문서와 학회지에 기고한 학술논문도 유명했다.
콧대가 높았던 영국 왕립 천문학회도 메리 워드의 실력을 인정해 초청 연사로 불렀다. 당시 왕립천문학회의 초청을 받았던 여성은 단 세 명. 빅토리아 여왕과 메리 워드, 메리 서머빌 뿐이었다. 국왕에 대한 의전을 감안하면 영국 과학계에서 인정받았던 단 두 명의 여성 천문학자의 하나였던 셈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메리 섬머빌은 92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수학과 천문학에 대한 공로로 옥스퍼드대학교의 단과대학인 섬머빌 대학에 이름을 남겼다.
불행했던 첫 번째 결혼, 사별 후 두 번째 결혼에서야 가정의 평안과 남편의 지원을 받았던 메리 섬머빌과 달리 메리 워드는 가정 생활에서도 행복을 누렸다. 24세에 결혼한 귀족 군인 헨리 워드와 금슬이 좋았다. 운명이 그의 행복을 질투했던 것일까. 8남매를 둔 어머니이자 과학자로서 재능을 꽃피워 가던 메리 워드는 참변을 당해 42세 인생을 마쳤다. 대신 역사에 이름은 새겼다. 과학자가 아니라 최초의 교통사고 사망자로.
사고 일시는 1869년8월31일. 5촌 조카가 제작한 증기자동차를 남편, 조카들과 함께 타고 골목의 커브 길을 돌던 중 사고가 일어났다. 마침 얕은 구덩이의 커브 길을 돌 때 차가 크게 흔들리며 메리가 튕겨 나갔다. 하필이면 떨어진 곳이 뒷바퀴 쪽. 무게가 많이 나갔던 증기자동차의 철제바퀴는 메리의 머리와 목을 으스러뜨렸다. 메리는 현장에서 바로 죽었다. 자동차 등장 초기, 기계적 결함이나 증기 보일러 폭발로 사상자가 생긴 적은 있었으나 주행과 관련된 인명피해는 이때가 처음이다.
메리 워드의 사망은 주요 언론이 속보로 다룰 만큼 영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촉망받던 여류 과학자의 급작스런 사망 사고는 영국 자동차 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영국제 자동차의 발전이 가로 막혔다. 자동차의 속도를 시속 6.4㎞로 제한했던 적기법(赤旗法·Red Flag Act)이 생명을 이어나갔다. 마차업자들의 로비로 1865년 제정된 이 법의 부당함을 지적하던 폐지론이 이 사고를 계기로 자취를 감춘 탓이다.
발명 의욕도 꺾였다. 워드가 탑승했던 차가 사제 차량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이 자취를 감췄다.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경고용 붉은 깃발을 흔들며 걷도록 강제한 적기법 아래 개인의 차량 제작을 금기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동차의 속도 향상과 기술개발의 주도권은 영국에서 독일로 넘어갔다.
속도 제한에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영국이 기술경쟁에서 뒤진다는 여론에 따라 적기법을 폐지한 1896년, 사고 급증 우려에 대한 보완책 마련 차원에서 자동차보험 상품이 첫선을 보였다. 워드 사망 이후 오늘날까지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 누계는 약 2,000만명. 그나마 지난 1990년대 이후 사망자 증가세가 꺾인 게 다행이다. 각종 안전 장치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진 덕분이다.
자동차가 세계적으로 보급된 1960년대 중반까지 운전자와 탑승객 보호 장치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었다. 각종 안전장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소비자 보호운동 덕분.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수차례 출마했던 변호사 출신 랠프 네이더를 비롯한 소비자 보호 운동가들은 저술과 강연을 통해 자동차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따졌다. 육중한 자체에 속도가 주는 운동에너지가 커서 사고가 발생하면 별 수 없다고 인식하던 자동차회사들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었다. 이전까지 자동차 사고는 죽음과 다름없었다.
인식이 변하니 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 받침과 충격 흡수 핸들, 안전띠 등 강제화한 법규가 마련되고 에어백 같은 보호장비도 선택 품목에서 기본 장착품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에어백 같은 ‘소극적 안전장비’가 ‘적극적 안전 장비’로 바뀌는 추세다. 자동 주행이나 위급 시 자동 멈춤 기능이 없으면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시대다. 메리 워드의 비극적인 자동차사고로부터 169주년이 지난 오늘날, 아무리 안전 장치와 기술이 발달해도 자동차 운전에는 금과옥조가 있다. 안전 운전! 보복 운전이나 대형 고속버스가 날벼락처럼 승용차를 덮치는 불의의 사고도 안전 의식 제고 외에는 답이 없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