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호모 헌드레드 시대' 표준화로 대비를

제대식 국가기술표준원장

급성장하는 고령친화 산업

정부 주도 표준화 한계 있어

'약자 배려' 기업도 적극 동참

'국민행복 표준화' 마련해야

제대식 국가기술표준원장제대식 국가기술표준원장




얼마 전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저승사자를 민망하게 하는 재치 있는 가사로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노랫말처럼 과거에 비해 우리의 평균수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유엔은 지난 2009년 ‘세계 인구 고령화 보고서’를 통해 인간의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을 경우 100세 장수시대가 보편화될 수 있음을 언급하며 이를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라는 신조어로 정의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2년 이미 남녀 평균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섰으며 만 100세 이상 고령자는 3,159명(2015년 기준)으로 지난 2010년의 1,835명보다 72.2% 늘어났다. 10년 전과 비교할 때는 무려 3.3배나 급증한 수치다.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호모 헌드레드 시대에 성큼 들어선 것이다.

이렇듯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모든 국민은 편리하고 안전한 생활을 꿈꾸기 마련이다. 이를 위해서 신체적 건강과 노후자금, 사회적 관계 등의 개인적인 준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머지않아 주거, 교통, 금융, 여행·레저,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노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변화가 올 것이 분명하다.

‘노인이 편하면 모든 사람이 편리하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경로사상과 같은 윤리적인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다. 최근 액티브 시니어가 슈퍼소비층으로 급부상하면서 실제로 산업과 경제활동의 중심축도 급격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고령친화산업의 시장규모가 지난 2012년 27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39조3,000억원으로 43.4%가 증가했으며 오는 2020년에는 72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신체적·인지적으로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는 고령자와 장애인들도 점점 융복합화되는 제품과 서비스를 활용하는 데 소외되지 않도록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표준의 역할이다. 시·청각 능력이 떨어진 노인이나 장애인이 큰 무리 없이 TV를 시청할 수 있듯이 누구에게나 접근성이 보장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 바로 표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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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편안하고 활동적인 노후생활을 도와주는 휠체어·보청기·전동스쿠터 등 고령친화형 의료기기는 물론 노인 요양시설과 헬스케어, 노인 여가와 관련한 서비스 등의 표준화도 이에 해당된다. 특히 이들 서비스 분야의 표준화는 고객만족도와 경쟁력 향상은 물론 소비자 불만처리와 피해구제까지도 명확하게 해준다.

인간수명 100세 시대를 맞아 기술개발과 산업의 경쟁력 제고 측면에서 추진해오던 국가표준화사업도 이제는 사람중심·행복가치 중심으로 변화될 때가 온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고령자와 장애인용 제품에 대한 국가표준(KS) 95종을 제정해 삶의 질을 개선했으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국제표준과의 부합화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표준화는 실효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표준화를 통해 ‘더 나은 세상, 지속 가능한 세상’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 못지않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기업의 적극적인 동참이 중요하다. 아울러 표준의 이용자이자 수혜자인 국민 개개인의 관심이 더해질 때 가시권에 들어선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당당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병마용갱·아방궁 등 인류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진시황도 마지막에는 불로초를 찾다가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진시황이 지금의 100세 시대에 돌아온다면 화폐와 문자, 도량형의 표준화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연장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국민 행복 표준화에 매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대식 국가기술표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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