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해외 순방은 한반도 외교·안보의 운명을 가르는 일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2일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변국들을 설득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7박8일 일정의 러시아·중국·라오스 순방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각종 다자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러시아·중국·미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국 정상들과 잇따라 회담을 하며 ‘사드·북핵외교’를 펼치게 된다. 이번 순방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안보지형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순방에 앞서 2일 오전 보도된 러시아 국영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건부 사드 배치론’을 제기했다. 러시아 국영통신사 ‘로시야 시보드냐’와의 인터뷰에서 “문제의 본질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므로 이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 배치의 필요성도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처음으로 ‘조건부 사드 배치론’을 언급함으로써 이를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할 논리로 활용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조건부 사드 배치론’ 카드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핵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당분간은 북핵과 사드가 ‘공존’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중관계의 경우 사드 문제를 놓고서는 견해 차를 좁히기 어려울 것인 만큼 한중 정상들이 ‘양국 간 이견이 있지만 서로 존중하며 해결해나가겠다’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위해 서로 노력하자’는 정도로만 관리된 메시지를 내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박 대통령의 ‘조건부 배치론’이 중국보다는 러시아에 상대적으로 효과적인 설득 논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에서의 미·러 대결구도에 집중하느라 한반도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는 경제협력 강화가 사드 문제까지 푸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극동지역 경제 부흥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이 성공하려면 한국의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한·러 정상회담에서 경제 분야의 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대신 ‘조건부 배치론’을 부분적으로나마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박 대통령이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박 대통령은 이번 인터뷰 기사에서 “양국 경협의 무대를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대했으면 한다”면서 “한국과 EAEU가 지난 9개월간 벌인 FTA 공동 연구가 곧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EAEU FTA 논의가 급진전할 가능성을 내포한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한·EAEU FTA는 유라시아 지역 경제통합과 무역자유화를 촉진해서 경제의 동반성장과 소비자 후생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출범한 EAEU는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아르메니아·키르기스스탄 등 5개국이 단일시장으로 통합한 형태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자동차 부품, 전자기기 등이어서 FTA가 체결되면 한국 수출에 큰 도움일 될 것으로 기대된다. EAEU는 1억8,000만명 인구의 시장인 동시에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14.4%, 가스 생산량의 20%, 석탄 생산량의 6.4%를 차지하는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한·EAEU FTA는 윈윈의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블라디보스토크=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