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한국경제 뒤흔드는 '변양호신드롬' 망령

"원칙고수" 책임회피 급급하다

한진해운發 물류대란 심화에

관료들 뒤늦게 대책 허둥지둥

전문성없는 구조조정 계속땐

경쟁력 약화·경제 먹구름 우려

0515A01 업종별 구조조정 대상 업체 현황0515A01 업종별 구조조정 대상 업체 현황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국내는 물론 전 세계 물류시장에 메가톤급 후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변양호 신드롬’에 빠진 관료들의 근시안적 해법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불렀다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원칙을 지켰다”고 자화자찬하던 관료들은 국가 신인도까지 하락하는 등 한진해운 후폭풍이 예상보다 거세지자 허둥대기에 바쁜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특정 산업에 대한 전문성 없는 금융당국 중심의 구조조정이 계속될 경우 한국 주요 산업군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경제 전반에 먹구름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일 정부와 금융계에 따르면 가뜩이나 변양호 신드롬에 발목 잡혀 있는 정부 관료들이 지난해 경남기업 사태와 최근 대우조선해양 비리 의혹까지 겪으면서 기업 구조조정 유전자(DNA)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여기에 ‘서별관회의’ 청문회에 금융당국 수장들이 줄줄이 불려가면서 기업 구조조정의 헤드쿼터인 금융당국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런 식이라면 해운업보다 더 파급효과가 큰 조선업 구조조정을 비롯해 철강·화학 등 줄줄이 이어지는 산업 구조조정을 과연 관료들이 책임감 있게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관료들은 한때 하이닉스·현대건설·SK글로벌·대우건설·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LG카드 등 수많은 성공적 기업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때로는 채권단의 팔을 비틀고 때로는 시장에 읍소하며 산업에 온기를 되살린 구조조정의 ‘막후 해결사’들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직을 걸고라도 산업을 살리겠다’는 열정적인 관료들의 모습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세종시로 대다수 부처가 이전한 후 전문가집단과의 교류와 소통이 막히면서 무기력해진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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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금융당국 전직 고위관료는 “한진해운 같은 오너 기업에 대한 무리한 지원이 불가능했다면 경영권을 빼앗아서라도 해운 산업을 지킬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는지, 법정관리를 저울질했던 수개월의 시간 동안 후폭풍 대비책은 왜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는지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관료는 “아무도 피를 묻히려 하지 않는데 제대로 된 구조조정의 ‘승부수’가 나올 수 있겠냐”고 말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직후 해외 화주들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제정신이냐”는 아우성이 나온 것은 그만큼 수출현장에서 이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특정 산업에 대한 전문적 식견 없이 금융논리만으로 결정해서는 안 될 문제였다는 것이다. 한 해운 업계 관계자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뱃길을 스스로 끊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탄식했다.

국책연구원의 한 인사는 “경남기업 사태 이후 더 이상 정부가 개입하는 워크아웃이나 자율협약은 힘들어졌다는 공감대가 관료들 사이에 공고히 형성됐다”며 “그럼에도 소신을 가진 관료가 있었다면 이번에 한진해운을 살리겠다고 나섰겠지만 금융위원회가 책임회피에 급급했던데다 정부의 파트너인 산업은행 회장이 비관료 출신이어서 채권단 자체가 컨트롤이 안 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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