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외이사들이 통상 별다른 이견을 드러내지 않고 ‘거수기’ 노릇을 해온 점을 감안하면 일종의 ‘반란’이 벌어진 셈이다.
그리고 외견상 내린 최종 결론은 한진해운이 보유한 미국 롱비치터미널을 먼저 담보로 잡은 뒤 자금을 대여하는 것. 선(先)지원·후(後)담보에서 선담보·후지원으로 지원 형식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떤 얘기를 나눴길래 이렇게 긴 시간 진통을 이어갔을까.
대한항공 이사회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사내이사 4인과 김승유 하나학원 이사장, 이석우 법무법인 두레 변호사, 이윤우 거제빅아일랜드자산관리 회장, 김재일 서울대 경영대 교수, 반장식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안용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등 총 10인으로 구성되며 이번 안건은 이사회 과반의 동의가 있어야 가결할 수 있어 사외이사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11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처음부터 ‘대승적’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일단 공감대를 나눴다. 한 사외이사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해운업은 산업의 특성상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며 “가능하면 지원을 하고 싶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지원 방식과 절차를 두고 팽팽하게 맞섰다. 대한항공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형식상 대한항공의 사내유보금을 활용해 지원에 나서는 방식이어서 추후 이 돈을 못 받으면 배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더구나 여론의 시선이 집중돼 사외이사들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경영진은 10일 이사회에서 롱비치를 담보로 잡는 데 법적 하자가 없다는 점을 집중 설명했다. 한 사외이사는 “한진해운이 대출을 받을 때 롱비치를 금융사에 선순위 담보로 제공한 상황이고 대한항공 담보는 후순위여서 금융사가 담보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사외이사들로서는 비록 후순위이지만 담보가치상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담보를 설정했다는 ‘형식적 틀’을 갖춘 만큼 배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한항공 재무 담당자들은 11일 롱비치터미널을 담보로 잡은 해외 금융기관과 접촉해 설득 작업에 나섰다.
롱비치 담보 문제가 해결되는 데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대한항공 안팎에서는 추석 연휴 직후 지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사외이사 사이에서는 한진해운 처리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고 한다. 다른 사외이사는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업을 법정관리로 보내 나라 전체가 더 큰 비용을 떠안은 현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