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 구조조정 청문회는 예상대로 흐지부지 끝이 났다. ‘맹탕’이라고 지적받고 있는 이번 청문회에서 그나마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눈물이었다. 지난 2006년 작고한 남편인 조수호 전 회장을 이어 회사 경영을 맡아 2014년까지 이끌었던 그는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는 그에게 한 국회의원은 ‘울지 마시라. 지금 국민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몰찰 수 있지만, 백번 맞는 말이다.
고(故)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이 ‘수송 보국’의 기치를 내걸고 1977년 설립한 한진해운은 1970~1980년대 미주·구주 항로 등 항로를 개척하며 수출 한국의 성장에 기여했고 세계 7위의 선사까지 올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글로벌 해운사들의 치킨게임에서 결국 패자가 됐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으로 물류대란이 빚어지고 수천명의 직원들은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최 전 회장은 실패한 경영자다. 그의 비극은 기업경영과는 전혀 상관없던 전업주부에서 어느 날 덜컥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그 날 시작됐을 것이다. 해운업은 대표적인 시황산업이다. 국제 화물 교역에 따라 시세가 춤을 추고 그에 따라 기업들이 명멸하는 약육강식의 시장이다. 해운사 CEO는 순풍과 태풍이 교차하는 바다를 헤쳐나가야 하는 짐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대주주이자 존경받던 작고한 회장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의 CEO에 올랐다. 조직 내부에서도 사회적으로도 그 문제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수백 년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존경받는 가족기업은 많다. 하지만 그런 기업들의 가장 역량 있는 후손을 뽑아 고도로 훈련을 시키고, 철저한 검증을 거친 후 경영을 맡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 스페인은행으로 유럽 최대은행으로 성장한 산탄데르은행이 그렇다. 흔히 보는 우리의 기업승계와는 다르다.
한때 세계 조선시장에서 수주 1, 2위를 다투던 대우조선해양의 몰락도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과실만 향유하는 데 골몰했던 경영자들의 책임이 크다. 정권에 줄을 대고 정관계·언론에 잘 보이면서 임기연장하고 자기가 재임할 때만 아무 문제 없으면 된다는 게 드러난 전 경영자들의 모습이다.
조선·해운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먹거리가 되는 주요 산업들은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상대방을 죽여야 사는 극한의 게임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미국의 유명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일찍이 “경제성장도, 산업 발전도 미분을 하면 결국은 끊임없는 구조조정의 연속이다. 폐쇄적 경제가 아닌 이상 어느 국가도 동태적 국제분업체제를 피할 수 없고, 한 국가의 비교우위 산업이 끊임없이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갈파했다. CEO는 개별적인 기업단위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사령관이다. 그의 순간순간 판단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결정되고 이는 국가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업을 일군 창업자의 일가(一 家)라는 이유만으로, 정권에 잘 보였다는 이유로 차지하기에 CEO의 자리는 너무 무겁다.
삼류기업은 위기에 파괴되고 이류기업은 위기를 이겨내며 일류기업은 위기 덕분에 발전한다는 말이 있다. 세계 경제의 부침에 따라 기술 발전에 따라 앞으로도 산업별 기업단위별 구조조정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CEO를 뽑아야 한다는 것을 한진해운과 대우조선해양의 비극은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