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4조원이 넘는 돈을 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서 결국 부총재직을 날리고 비핵심 국장 자리만 얻게 됐다.
12일 기획재정부는 “유재훈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이 AIIB 회계감사국장(Controller)에 선임됐다”고 밝혔다. 회계감사국장은 AIIB 내 재정집행 계획을 수립하고 회계 및 재무보고서를 작성한다. AIIB 조직 내부 통제를 담당해 AIIB를 통한 우리 기업의 해외사업 유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당초 정부는 지난 7월 공모절차가 시작된 3개의 국장직(회계감사·재무·리스크관리) 중 재무국장(Treasurer)을 차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재무국장은 인프라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요직이다. 그러나 이 자리는 다른 나라가 차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의 서별관회의 파문으로 AIIB 부총재에서 국장급으로 강등된 리스크관리 국장도 한국이 차지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지난 2월 AIIB 회원국 중 다섯 번째로 많은 37억달러(약 4조1,092억원)를 내고 부총재직을 얻었지만 7개월 만에 비핵심 국장직만 얻게 됐다. 앞서 AIIB는 홍 전 회장이 수행하던 리스크담당 부총재(CRO)를 국장급으로 내리고 재무담당 부총재(CFO)를 신설하는 공고를 냈다. 이 자리에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를 지낸 프랑스의 티에리 드 롱게마르가 임명될 예정이다. 드 롱게마르는 이번 달 이사회부터 정식으로 부총재직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우리는 국제자문단·민간투자 자문관 자리를 얻었지만 AIIB 내 실질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AIIB 국제자문단에는 현오석(사진)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선임됐다. 자문단은 회원국과 비회원국 출신 10명 내외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다. 국제금융 분야의 명망 있는 인사들로 이뤄지고 AIIB의 전략과 주요 이슈에 도움말을 준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자문단은 비상근직이어서 AIIB 내 형식적인 자리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민간투자 자문관에는 이동익 전 한국투자공사(KIC) 부사장(CIO)이 선임됐다. AIIB 인프라 사업 추진 과정에서 민간자본과의 공동투자 업무를 담당한다. AIIB 조직이 아직 정비가 안돼 자문관의 역할이 크다는 게 정부의 평가지만 부총재보다 중량감이 월등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