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연계 키워드는 단연 ‘셰익스피어’였다. 햄릿·로미오와 줄리엣·맥베스… 대문호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주옥같은 그의 명작이 연극·오페라·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쏟아진 가운데 또 셰익스피어 명작 두 편이 한국에 상륙한다. 식상하다는 지적이 있을 법하지만 이번 두 작품은 아주 색다르다. 십이야 속 비호감 캐릭터 말볼리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1인 극 ‘나, 말볼리오’와 명대사를 노래와 이미지로 바꾼 음악극 ‘햄릿’이 그 주인공이다.
“자, 이제 내가 복수할 시간이야. 준비됐지? 이제 시작하지.” 연극 ‘나, 말볼리오’는 셰익스피어 5대 희극 중 하나인 ‘십이야’의 조연 말볼리오를 주인공으로 한 1인 극이다. 말볼리오는 원작에서 고지식하고 허영에 찬 청교도로, 주변 인물에게 속아 여주인공 올리비아에게 구애하다 망신을 당하는 인물이다. 말이 악역이지 제 편 하나 없이 주변인에게 놀림만 당하는 딱한 비호감 캐릭터인 셈. “복수하겠다”는 말과 함께 조용히 사라진 이 가여운 인물은 영국의 배우이자 연출가·극작가인 팀 크라우치에 의해 무대에서 부활했다. 연극 십이야에서 실제 말볼리오를 연기했던 팀 크라우치는 ‘나, 말볼리오’의 주연·극·연출을 맡았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차림새로 등장해 과장된 슬랩스틱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면서 ‘별 의도 없이 저지르는 무시와 조롱이 다른 이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도 전달한다. “셰익스피어의 극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이 독특한 1인 극은 이달 21~24일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작품보다 유명한 이 대사가 섬뜩한 카바레 음악으로 변신한다. 영국 컬트 밴드 타이거 릴리스와 덴마크 극단 리퍼블리크가 만든 음악극 ‘햄릿’을 통해서다. 셰익스피어의 명문(明文) 대신 음악과 이미지가 극의 중심에 선다. 장대한 이야기는 21개의 장으로 압축했고, 각 장면을 노래와 이미지로 표현한다. 타이거 릴리스는 2013년 내한공연한 음악극 ‘늙은 뱃사람의 노래’로 한국 팬에게도 친숙한 아티스트다. 이들은 피아노·아코디언·기타·수자폰(최저음용의 대형 금관악기)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각 장면을 이끌어가는데, 사랑하는 남자(햄릿)에게 아버지를 잃은 오필리어의 심정(Alone)과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햄릿의 감정(Worms)을 타이거 릴리스의 보컬 마틴 자크가 그만의 매력적인 가성으로 풀어냈다. 19곡의 음악과 가사를 만든 마틴 자크는 셰익스피어 작품 속 대사와 독백을 가사로 차용기도 했다. 연출이자 무대 디자이너 마틴 툴리니우스가 창조한 감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10월 12~14일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