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안전지대로 불리던 한반도에 최근 지진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추석을 며칠 앞둔 12일 경주에서는 규모 5.8의 큰 지진이 났다. 한국에서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다. 1978년 충남 홍성에서 발생한 규모 5.0의 지진은,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건축시 내진설계가 제도화하는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은 환태평양 지진대, 일명 ‘불의 고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그 동안의 통념이었다. 그동안 피해가 적었던 것은 일본 열도가 지진의 충격을 대부분 흡수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이 지진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규모 7.0의 강진이 몇 번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진원(震源)’은 땅 속 지각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점이고, ‘진앙(震央)’은 지진이 발생한 곳의 지표면을 말한다. 지진의 크기를 표현하는 리히터 규모(Richter Scale)은 1935년 미국의 지질학자인 찰스 리히터 교수팀이 제안한 방법이다. 각 단계별로 지진의 진폭이 10배 차이가 난다. 리히터 규모 6.0은 5.0에 비해 10배 진폭이 크다. 에너지의 방출량은 규모가 0.2씩 늘어날 때마다 2배가 커진다. 규모가 1.0 늘어나면 32배, 규모가 2.0 증가하면 1,024배의 강력한 에너지가 발생한다. 대개 규모 5.5를 넘으면 건물벽이 갈라지며, 6.1이 넘으면 건물 붕괴로 이어져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8.0이면 초대형 지진이 되는데, 2011년 2만5,000명이 죽거나 실종된 동일본 대지진은 규모가 9.0이었다. 이번 경주 지진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위력과 비슷한 수준이다. ‘
유사 이래 최악의 지진은 1556년의 중국 산시성 대지진이다. 규모 8.0에서 9.0으로 추정되는 이 지진으로 당시 산시성 인구의 60%인 83만 명이 사망했다. 1976년에 일어난 중국 탕산의 지진은 규모 7.8이었는데 엄청난 인명 피해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문화 혁명기를 거치며 정치적으로 예민하던 중국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외국의 원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공식사망자가 24만 명, 현실적인 추산사망자가 70만 명이라고 한다. 세 번째로 인명피해가 컸던 지진은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연안에서 발생한 규모 9.1의 지진이다. 공식기록상 30만명에 이르는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재난이지만 그래도 대비를 잘 하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2010년에 일어난 아이티 지진은 규모 7.0이었지만 3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가난한 나라여서 내진 설계를 갖춘 건물 등 대비가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칠레는 1960년의 규모 9.5의 사상 최대의 대지진을 겪었지만 국가 차원에서 방비가 잘 되어 있어 인명피해가 909명으로 비교적 적었다.
한 번 발생하면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초래하는 대지진을 미리 알 수는 없을까. 지진 전문가들은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지진이 어느 지역에서 언제 발생할 것이라는 식으로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강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비교적 근래 발생한 대지진도 세계 과학계는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지진 예측의 어려움 때문에 이번 경주 지진 때처럼 가스 냄새나 개미떼 등 동물들의 출현, 깃털 모양 구름 등 자연현상들이 ‘지진 전조’로 포장되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지진운이나 지진광 등이 지진 전조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관성 있게 관측되지 않아 과학적인 근거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지진 예측 방법을 꾸준히 탐색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진이 발생하기 전 지표의 움직임이나 특정 기체의 농도 변화를 감지해 지진 발생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2014년 5월 국제 저널 ‘사이언스’에 2014년 4월 발생한 규모 8.0의 칠레의 지진 전조 증상에 대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대 애밀리 브로드스키 교수 연구팀과 손 레이 교수 연구팀의 공동 연구 결과 칠레 지진 전 칠레 먼바다 밑의 판과 판이 만나는 섭입대 근처에서 몇 ㎞ 간격으로 소규모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며칠 뒤 강진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에도 지진 발생 전 작은 지진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패턴을 잘 분석하면 지진을 예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동굴 속 방사성 물질로 라돈의 동위원소인 토론(Rn-220)을 이용해 지진을 예측하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김규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 발생 한 달 전부터 경북 울진 성류굴에서 토론과 라돈(Rn-222) 농도가 평소보다 3~4배 급상승한 것을 알아냈다. 암석에서 극미량이 발생하는 라돈과 토론은 지구 내부 작용으로 지각이 뒤틀리는 등의 움직임이 생기면 짧은 시간에 다량으로 뿜어져 나온다. 연구진은 “토론은 원소 질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56초에 불과해 기상 현상의 영향을 받지 않아 지진을 예측하는데 적합하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지난해 8월 게재됐다.
그러나 전조 현상을 이용해 지진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아직 초보 단계다. 전 세계 대륙과 해양지각에 지진 전조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전 세계 동굴마다 토론 감지 장치를 설치해 모니터링하는 것도 아직 불가능하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과학적으로 증명돼 현실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진 예측 기술은 아직 없는 실정이다. 일례로 지진이 빈번한 일본은 1995년 고베 대지진(규모 7.2) 이후 약 1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지진 예측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현재 지진이 발생한 뒤 가능한 한 빨리 지진을 감지한 뒤 지진 발생지를 알아내 지진 발생 사실을 경보 하는 시스템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진 발생 사실을 몇 초만 일찍 알려줘도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일본 도쿄대 기술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지진 조기 경보를 통해 지진 발생 사실을 지진파가 도달하기 전보다 20초 먼저 알릴 경우 95%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 지진파 중 수직 진동으로 주로 피해를 일으키는 S파가 평균 초속 3~4㎞로 이동하는 특성을 고려하면, 지진 발생 지점으로부터 50㎞ 거리에 피해 지역이 위치할 경우 5초 이내에 지진 경보를 하면 최소 7초 이상의 대피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은 지진 발생 뒤 5초 이내에 경보 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일본은 지진 조기 경보시스템으로 인명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신속한 복구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 “지진 사전·사후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국민안전처는 이번 경주 지진 때 지진 발생 후 9분이 지나서야 지진 발생 문자를 발송해 비난을 받았다. 기상청은 현재 지진을 감지해서 경보 하는데 50초가 걸린다. 하지만 지진 긴급재난문자는 기상청이 공식 지진통보문을 안전처에 보내면 안전처가 송출 대상 지역을 지정해 발송하는 체계로 이뤄져 구조적으로 기상청의 조기경보보다 7∼8분 늦을 수 밖에 없다. 기상청에서 조기경보를 활용해 긴급재난문자를 직접 보내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와 함께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기상청은 전국 대상으로 지진 발생후 10초 이내를 목표로 지진 조기경보 시스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발 작업은 2020년쯤 완료될 전망이다.
최근 과학기술계에선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워치 같은 생활 속 디지털기기를 활용해 정확도와 신속성을 높인 지진 감지·경보 연구에 관심이 많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갖추고 진동감지 기능을 탑재한 디지털기기 사용자가 평소에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진동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에서 지진 신호를 판별하는 것은 머신러닝 기술이 맡는다. 지진 신호로 판별되면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 TV·스마트폰 등 각종 디지털기기로 지진 경보 조치를 빠르게 전달한다.
미국 버클리대 지진연구소는 이미 ‘마이쉐이크’라고 이름 붙은 관련 앱 개발에 성공했다. 지질자원연구원은 버클리 연구진이 개발한 기술에 우리나라 특성을 반영해 탑재한다면 유사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병도기자 d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