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원전 건설, 개발·발전논리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70~80년대 단층 데이터 없이

전력수요 위주 건설사례 많아

“활성단층 지대에 원자력발전소를 10여기나 지었으니 전 세계적으로 망신거리입니다.”

정부 정책자문역으로도 활약해온 국내 지질학 분야 권위자인 A씨는 최근 몇 년간 국제학술행사를 갈 때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상황을 종종 겪고 있다. 한국은 왜 지진 위험이 있는 활성단층 인근에 원자력발전소를 집중적으로 지었는지를 묻는 해외 연구자들의 질문을 받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원전이 한국에 지어진 것은 지난 1970~1980년대부터였는데 당시에는 국내 지질조사 데이터가 별로 없어 단층 활동이 살아 있는 곳인 줄 모르고 산업시설이 밀집해 전력수요가 몰리는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주로 원전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는 부끄러운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늦게나마 국내 활성단층 연구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1995년에 발생한 ‘굴업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철회’ 사태였다. 당시 정부가 인천에서 80㎞ 떨어진 굴업도에 방폐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극심한 주민 반발에 부딪혀 진통을 겪고 있었는데 부지 정밀조사 과정에서 굴업도 해저의 활성단층이 발견돼 결국 사업이 백지화됐기 때문이다. 이후 단층 조사는 위험시설의 부지 선정 시 주요 요소로 점차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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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질학계는 국내 활성단층 연구를 ‘원자력발전소가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양산단층과 울산단층 주위에 총 60여개의 단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경북 울진과 경주·부산 등 영남권에 원전을 지으면서 찾아낸 것들이다. 그렇다고 이를 원전 개발과 단층 연구의 ‘선순환’으로 볼 수는 없다. 경재복 한국교원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40㎞ 이내를 조사하는데 당장 필요한 원전을 짓기 위한 것이었지 단층 연구는 부수적이었던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개발과 발전 논리가 안전보다 우선했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질학 전문가들은 이번 경주 지진을 계기로 ‘안전 중심 사고’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새로 지어진 원전은 규모 6.5를 견디도록 설계됐다지만 노후한 원전은 걱정”이라며 “꼭 원전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일반 건물과 학교·병원 등 지진 한 번에 스러질 것들이 태반이며 당장 인명을 구하러 달려가야 할 소방서도 내진설계가 제대로 안 돼 있다”고 꼬집었다.

경 교수는 “안전한 사회가 되려면 안전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렇게 고층 건물이 많은 곳에서 인구밀집지역에 대한 단층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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