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더 두고볼 수 없는 원화강세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美 원화절상 압력 거세지는데

투자부진 탓 5년째 불황형 흑자

정치권, 관련규제 개혁 나서야





2012년 6월 초 이후 100엔당 원화 환율은 1,510원에서 최근 1,100원까지 급락하면서 원화는 엔화에 대해 39%나 절상됐다. 지난해 6월 초에는 885원까지 하락해 71%나 절상됐으나 최근 일부 개선된 수준이 이 정도다. 이러한 원화의 엔화에 대한 급격한 고평가는 한국 수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수출증가율은 지난해 초부터 19개월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지속하다 지난달 소폭 증가로 돌아섰으나 이달 들어 다시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던 2010년 막대한 투자를 했던 기업들의 수출길이 막히면서 가동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수준인 72%까지 하락해 부실이 늘고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실정이다. 설상가상 최근 발표된 일본의 2·4분기 성장률이 전기비 0% 수준에 머물자 지난 21일 일본은행은 양적 완화 수준은 현재대로 지속하면서 장기금리를 제로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다. 즉각 엔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반면 한국은 속수무책이다. 금리 인상을 연기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중국 등 모든 국가들이 자국 통화가치 절하로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지난 4월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을 환율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하고 미국 재무장관이 이례적으로 한국은행을 방문한 후 원화가치는 급상승하고 있다. 달러당 원화환율은 1,100원선에서 등락을 보이고 있다. 엔화가 약세로 가면 원·엔 환율이 하락해 수출에 추가적인 부담이 될 우려도 있다. 환율전쟁에서 한국은 언제나 패자였다. 1997년·2008년 위기 등 환율전쟁의 패배는 언제나 위기로 귀결됐다. 이번에도 다시 패자가 돼 위기를 맞을 것인가. 거시건전성 규제를 강화한다든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의 어려움에 대해 유사한 국가들과 연대해 국제금융외교를 강화한다든지 무슨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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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경상수지 흑자가 1,000억달러 안팎 이어지고 있으니 과거와는 다르다고 강변하지만 정작 이것이 한국 경제의 중증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지표다. 수출 증가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가 아니라 수출감소에도 불구하고 국내투자 부진으로 중간재 원재료 중심인 수입이 더 크게 감소해 초래된 불황형 흑자다. 불황형 흑자는 위기로 투자가 극도로 부진할 때 언제나 발생했다. 1997년 위기로 1998년 투자증가율이 -22%로 급락하면서 수출이 2.8%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35.5% 대폭 감소해 경상수지가 당시 사상 최대였던 426억달러 불황형 흑자를 기록했다. 2008년 위기로 2009년 투자증가율이 0%로 추락하면서 수출증가율이 -13.9%였음에도 수입증가율이 -25.8%로 추락해 경상수지는 336억달러로 큰 폭의 흑자를 기록했다. 앞서 두 번의 경우는 불황형 흑자가 1년간 발생한 후 해소됐다. 이번 불황형 흑자는 2012년 이후 5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불황형 흑자가 5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 특히 투자 부문에서 중증이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원화절상 압력이 제기되고 있어 더욱 문제다.

투자를 살리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다. 투자가 회복되면 수입도 증가해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폭은 적정 수준으로 줄어들고 원화절상 압력도 낮아져 수출도 회복될 수 있다. 그런데 경제활력의 바로미터인 기업설비투자는 지난해 말부터 아예 빙하기를 이어가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은 투자환경 개선에 중요한 구조개혁이나 규제혁파를 위한 관련법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규제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투자부진은 불황형 흑자로 원화가치 절상압력을 높이고 수출감소로 이어져 일자리를 더욱 앗아가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경제살리기에 여야는 없다. 경각심을 가지고 오직 국민만 생각하고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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