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롯데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롯데와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신 회장을 불구속 기소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왔다. 검찰이 롯데 비리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신 회장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한데다 신 회장이 구속될 경우 국내에서만 12만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 등이 근거로 지목됐다. 롯데는 26일 공식 입장자료를 통해 “영장 실질심사를 맡은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침착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느끼는 위기감은 이미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만약 신 회장이 구속되면 지배구조 개혁 작업에서부터 투자·고용·인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영활동이 전면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텔롯데 IPO 5년 뒤로…롯데 경영 과거로 퇴행 우려=롯데는 경영 혁신의 중단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 이후 신 회장이 내세웠던 △호텔롯데 상장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 △과감한 투자를 통한 신성장동력 발굴 △경직적인 사내 문화 개선 등의 3대 수술 작업에 모두 급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진 탓이다.
특히 호텔롯데 기업공개(IPO)는 롯데그룹의 간판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체질을 바꾼다고 할 정도로 대대적인 혁신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호텔롯데를 상장해 일본 주주들의 지분율을 현재 99%에서 56% 정도로 떨어트리고 여기서 확보한 자금을 활용해 롯데건설 등 계열사 지분을 사들여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면 장차 지주사 형태로 지배구조를 재정비할 수 있다는 게 신 회장의 복안이었다.
그러나 신 회장이 구속되면 호텔롯데 상장이라는 첫 번째 고리부터 헝클어지게 된다. 한국거래소는 배임·횡령 같은 회계상 부정이 드러난 비상장사에 대해 3년 동안 상장을 추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 회장 구속 이후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오는 데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여기에 3년 금지 규정 및 금융감독원의 특별감리와 증권선물위원회의 의결 등 관련 절차까지 모두 더하면 호텔롯데 상장은 앞으로 5년 뒤에나 다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만약 신 회장이 구속될 경우 연말 인사에도 차질이 나타날 것으로 보이는데 자칫 임직원들마저 복지부동 모드로 들어가 전(全) 계열사가 아노미에 빠져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석 달 만에 투자 2조5,000억원 감소=그룹의 미래가 달린 투자에서는 이미 정체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롯데그룹 상장 계열 9개사(롯데케미칼·롯데쇼핑·롯데칠성·롯데제과·롯데하이마트·롯데푸드·롯데손해보험·롯데정밀화학·현대정보기술)의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4분기 말 기준 8조537억원이던 향후 투자금액(계속투자 포함)이 2·4분기 말 현재 5조5,108억원으로 2조5,000억원가량 감소했다.
이는 기존에 집행이 예정돼 있던 투자는 진행하고 있지만 새로운 투자 계획은 확정하지 못해 전체 투자의 ‘볼륨’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롯데정밀화학은 올 초 430억원을 투자해 페인트·샴푸 첨가제로 쓰이는 헤셀로스(HEC)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으나 신 회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한 뒤 당초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롯데의 또 다른 한 관계자는 “10월이면 임원 실적 평가와 더불어 내년도 투자 및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시기인데 아직 그룹 정책본부로부터 구체적인 지시가 없다”고 설명했다.
당초 예정된 투자가 지연되거나 취소되면 여기서 유발되는 고용도 덩달아 감소해 롯데는 물론 우리 경제 전반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