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씁쓸한 소식이 들려왔다. 미소금융 사업이 지난 23일 새로 출범한 ‘서민금융진흥원’으로 흡수된다는 내용이었다. 미소금융재단들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출범해 저신용 서민들에게 생활재활자금을 빌려줘왔다. 현 정부는 제각각 운영돼온 서민금융 사업들을 진흥원 산하로 모아 통합 관리하겠다고 설명한다. 반면 사정을 알 만한 금융권 ‘선수’들은 ‘이전 정부 흔적 지우기’라고 입을 모은다. 여러 사업이 하나로 통합되면 효율화될 것 같지만 오히려 운영이 경직화·관료화되는 폐단만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미소금융·햇살론 등의 서민금융상품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지원 대상과 성격, 운영 방식이 상이한데 이를 무리하게 통합하면 서민금융 서비스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떨어져 실질적인 국민 수혜는 반감될 수 있다.
기자의 뇌리에는 문득 박근혜 정부가 간판 사업으로 추진해온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이 떠올랐다. 청년창업 보육기관으로 전국에 들어선 이 센터들 역시 대기업들의 출연금을 받아 민관 합동으로 설립됐으며 창업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등 여러모로 미소금융과 닮았다. 관치 논란 등을 사거나 국회가 열릴 때마다 야권의 집중포화를 받는 모습도 비슷하다. 이런 분위기라면 해당 센터 역시 다음 정부에서는 미소금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박근혜 정부 스스로 치적에 대한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짧은 현 정부의 임기 중 이들 센터로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집착보다 다음 정부나 그다음 정부에서 결실을 보도록 양보하고 자신의 임기에는 창업 생태계의 밭을 일구고 씨만 뿌리겠다는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이미 고도화한 경제구조에서는 불과 5년의 대통령 임기 내에 착수해 성과까지 낼 수 있는 정책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논의할 때 단기 성과 문제를 과도하게 부각시키지 말기를 당부한다. 원래 첨단기술 분야의 창업은 천 번, 만 번의 도전 끝에 열 번, 백 번의 성공조차 담보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 최악의 경우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을 받는 창업인들이 거의 다 실패하더라도 그중 한 곳이라도 장래에 제2의 삼성전자나 한국판 구글, 혹은 제2·제3의 카카오·네이버 정도로 성장한다면 우리 경제에는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치권은 창업정책의 계량적 성과를 단기간에 채근하기보다는 창조경제혁신센터들이 좀 더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산업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예를 들어 창업 생태계에 풍부한 유동성이 공급되도록 빈약한 자본시장의 규모와 다양성을 확충하고 접근 문턱을 낮춰주며 창업을 도울 각계의 전문가 멘토풀을 더욱 확충해주는 일이다. 창업자들이 힘들게 일군 특허 등의 지적재산권 등도 국내외에서 침범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줘야 한다. 내년도 대통령선거의 승자가 여야 중 누가 되더라도 이런 노력으로 현 정부가 창업 생태계의 밑거름을 잘 깔아줘야 차기 정부가 과실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정치권이 유념할 필요가 있다.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