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저녁. 정부청사가 몰려 있는 세종시 인근 식당가는 평소보다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이는 당분간 보기 힘든 ‘반짝’ 특수가 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이날 약속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인근 식당가인 세종시 중앙타운에 위치한 한 음식점 관계자는 “이미 단골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라며 “법 시행 전 마지막으로 편하게 보자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이날 저녁 모임 중 상당수는 당일 ‘번개’로 잡힌 것들이다. 대부분의 예약이 당일 오전에 이뤄졌다. 서로 눈치를 보느라 당분간 저녁 약속을 피할 수밖에 없는 만큼 법 시행 전 회포를 풀자는 취지의 모임이 몰린 탓이다.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예정됐던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 등이 파행으로 열리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대기했던 고위공무원들의 저녁 시간이 갑자기 생긴 것도 당일 번개 모임이 가능했던 이유다. 저녁 자리에서의 화두는 단연 김영란법이었다. 어떤 대화도 ‘기승전(起承轉) 김영란법’으로 마무리됐다. 김영란법을 응용한 건배사도 나왔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다음날부터 180도 바뀌는 상황 때문인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관가 주변 음식점들은 이미 김영란법 적응에 들어갔다. 2만9,000원짜리 ‘김영란 세트’는 이제 어느 음식점이나 일반화됐고 인원에 맞춰 메인 메뉴를 기본으로 2만5,000~3만원에 상차림을 짜주는 곳도 여럿이다. 국세청 서울청 주변인 종로구 수송동에는 기존에 없는 신메뉴를 파는 곳도 등장했다. A복집은 메뉴판에 없던 삼겹살까지 판매하기 시작됐다. 충무로에서는 단골 등에 한해 술값은 아예 받지 않고 2만9,000원짜리 메뉴를 시키면 소주와 맥주를 무한 제공하는 한정식집도 나왔다. 술값을 포함하면 김영란법의 상한선인 3만원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 시행을 하루 앞둔 이날까지도 법 적용을 둘러싼 혼선은 계속됐다. 권익위원회와 교육부는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조기 취업을 한 경우 학점을 인정하느냐 여부를 놓고 충돌을 빚었다. 그동안의 관행이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위반되기 때문에 ‘부정청탁’에 해당된다는 권익위의 유권해석에 교육부가 대학별 학칙 개정을 통해 특례 규정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권익위가 주장하는 고등교육법 15시간 수업 조항은 대학의 의무지 학생의 의무는 아니다”라며 “학칙에 특례를 두면 부정한 청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던 권익위는 이날 “특례 규정을 만들면 문제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아직 적용 사례가 검증되지 않은 탓인지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대상자들이 지레 겁을 먹고 권익위에 유권해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권익위의 한 관계자는 “어제도 특정 부처 대변인실에서 기자실 부스에 지정석이 되느냐 여부를 물었다”며 “기존대로 알아서 하면 굳이 문제 삼지 않을 텐데 일일이 유권해석을 요구하면 딱 잘라서 말해줄 수 없는 상황이 더 난감하다”고 말했다.
/세종=김정곤·김민형·임지훈·임세원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