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구멍난 야구장 '안전 가이드라인', "팬들의 안전이 위험하다"

지난 2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베어스와 KT위즈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구름 관중’이 모였다./사진=김영준인턴기자지난 2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베어스와 KT위즈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구름 관중’이 모였다./사진=김영준인턴기자


‘(여성)날려라 날려 안타~두산의 정수빈((남성)안~타~정수빈!)’

남녀가 번갈아가며 ‘떼창’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정수빈의 응원가. 이는 현재 프로야구에서 여성 관중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여성 관중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관중의 유형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중, 한국 문화가 생소한 외국인 등의 관중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관중의 유형만 다양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 관중 수도 ‘와일드카드’ 도입 등 새로운 흥행 카드의 등장으로 연 800만 관중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프로야구를 이렇게 우리 삶에 깊숙히 침투했지만 야구장 내 음주문화는 아직 제자리 걸음이다. 야구장이 미성년자의 음주 천국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 6월 2일 KIA와 LG와의 경기에서 발생한 만취 관중의 안전요원 폭행 사건은 성숙하지 못한 음주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지난 2015년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야구장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SAFE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야구팬들도 상당수다.

▲관중도 모르는 SAFE 캠페인?

KBO 홈페이지에 게재된 ‘SAFE 캠페인’의 주요 내용을 담은 홍보 이미지./사진=KBO 홈페이지 캡처KBO 홈페이지에 게재된 ‘SAFE 캠페인’의 주요 내용을 담은 홍보 이미지./사진=KBO 홈페이지 캡처


과도한 음주를 제한하고 안전하고 성숙한 관람 문화를 만들겠다는 SAFE 캠페인. KBO는 각종 행사와 홈페이지를 통해 꾸준히 캠페인을 홍보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다. 대학원생 박신영(27)씨는 “야구장에 자주 와서 캠페인에 대해 들어보기는 했지만, 정확히 어떤 식으로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며 “홍보가 더 잘됐으면 자세히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구단도 ‘SAFE 캠페인’에 미적지근하다. 시행 2년이 지났지만 각 구단 홈페이지에서 구장별 안전 규정이나 SAFE 캠페인에 대한 안내 사항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KBO 리그 8개 구단 중 두산, 넥센, LG, SK, 한화, KT 구단 홈페이지에서는 구장 별 안전 규정을 찾아볼 수 없었고, 기아의 구단 홈페이지에서는 두 단계를 거쳐야만 안내사항을 찾을 수 있었다. NC, 롯데, 삼성은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통해 캠페인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KBO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과 동일하거나 KBO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수준이었다. 각 구단 홈페이지마다 ‘A to Z Guide’라는 제목의 안내를 통해 반입 금지 물품, 주류 구매 제한, 주류 판매점의 위치와 영업시간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 있으나 마나 한 입장객 소지품 확인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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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잠실야구장 외야1루측 출입문에서 관중이 입장하고 있지만 소지품 검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사진=김영준인턴기자지난 22일 잠실야구장 외야1루측 출입문에서 관중이 입장하고 있지만 소지품 검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사진=김영준인턴기자


KBO는 ‘SAFE 캠페인’의 일환으로 금지 물품의 반입을 막기 위해 경기장 입장 시 소지품 검사를 의무화했지만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관중 탓에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입장 부스에 위치한 관리 요원들은 입장하려는 관중들의 손에 들려있는 비닐봉지와 종이가방 등 확인이 쉬운 소지품만 눈으로 확인할 뿐이다. 실제 22일 방문한 잠실야구장의 경우 출입구 세 곳을 입장 시간 동안 지켜봤지만 캠페인 규정에 위반되는 부피가 큰 가방이나 소지품을 검사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경기장 외부에서 주류를 구입해서 입장하는 경우가 많은 야구장의 특성상 제대로 소지품 검사가 이뤄지지 않아 캔이나 병과 같은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물건이 자유롭게 경기장 내로 반입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직장 근처에서 주류를 구입해 온 김인성(30)씨는 “야구장에 입장할 때 검사를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는 것 같아 보통 주류 제품을 가리지 않고 사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구장 진행 요원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 김영진(가명) 씨는 “입장하는 관중에 비해 진행 요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일일이 입장객의 소지품을 검사할 수 없다”며 “혹여 검사를 위해 입장이 지체되면 대기하는 관중들이 항의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야구장 내 ‘음주’는 무제한?

주류 구매 수량이 ‘1인 4잔’으로 규정돼 있지만, 이를 지키고 있는 판매점을 찾기는 힘들다./사진=김영준인턴기자주류 구매 수량이 ‘1인 4잔’으로 규정돼 있지만, 이를 지키고 있는 판매점을 찾기는 힘들다./사진=김영준인턴기자


SAFE 캠페인은 야구장 내 주류 구매를 1인당 4잔으로 제한하고 있다. 과도한 음주로 인한 관중석 내 각종 안전사고와 경기 방해 행위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주류 구매 제한은 여러 번에 나눠 제한된 양보다 많은 양의 주류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경기 중에도 많은 관중이 주류를 구매해가는 상황에서 판매원들이 손님의 얼굴을 기억하고 제한된 양 이상의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1인당 4잔의 주류 구매 제한을 정확히 알고 있는 관중도 극히 드물었다. KBO가 ‘SAFE 캠페인’ 홍보를 위해 만든 메인 포스터에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직접 KBO 홈페이지를 방문해 세부 내용을 확인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는다면 숙지하기 힘든 내용이다. KBO의 실효적인 규제 방안 마련과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대목이다.

▲야구장은 ‘미성년자 음주 천국’?



이날 확인한 잠실야구장 안팎의 매점 중 주류 구매 시 신분증 검사를 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특히 경기장 내부의 한 생맥주 판매 부스에서는 “주문 시 신분증을 제시해주십시오”라는 안내 문구를 붙여놨지만, 실제로 신분증 검사를 하지는 않았다. 아직 앳된 외모를 가진 관중도 신분증 검사 없이 주류를 구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주류 구매가 금지된 미성년자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음주를 즐길 수 있는 ‘허술한’ 구조로 판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학생 정효은(20·여)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야구장에 자주 오며 느끼는 것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경기장에 있는 여러 매점을 돌아다니며 주류를 쉽게 살 수 있다”며 “미성년자가 술을 사는 게 자연스럽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야구장은 법이 정한 대표적인 다중이용시설이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야구장은 그 어떤 곳보다 안전성이 우선돼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의 운영 방식으로는 관중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이에 대해 KBO 측에서는 내년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대비해 안전 관리 규정과 실행 방법 등을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민호 KBO 기획팀장은 “내년에는 윈터미팅에서 구단 관계자들과 만나 ‘SAFE 캠페인’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수정해 더 안전한 환경에서 관람이 가능하도록 도울 예정”이라며 “경기장 외부에 물품보관소를 설치하고 지방자치단체, 구장 측과 협의해 보다 확실하게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공권력의 협조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종호기자 김영준인턴기자phillies@sedaily.com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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