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0일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100여일의 대장정을 이어온 검찰의 롯데그룹 경영비리 수사가 ‘종착역’을 앞두고 제동이 걸렸다.
검찰은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강수를 뒀으나 결국 기각됐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을 둘러싼 추가 혐의를 밝힌다’는 검찰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게다가 검찰은 ‘무리한 수사로 기업 흔들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애초 수사 진행과정에서 거론한 비자금 조성, 제2롯데월드 인허가를 둘러싼 정관계 로비 등의 의혹을 제대로 들춰보지도 못하면서 수사가 ‘용두사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주요 범죄 혐의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등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이 신 회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29일 기각했다. 검찰은 ‘불구속 기소한다’는 법조계 안팎의 예상을 깨고 26일 횡령·배임 혐의를 적용,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결국 법원에서 거절당하며 신 회장의 추가 혐의를 입증한다는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검찰이 신 회장 구속에 실패하면서 법조계 안팎에서는 롯데그룹 경영비리 수사가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비자금 조성 등의 중심에 서 있는 신 회장을 구속해 추가 혐의를 밝힌다는 검찰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앞으로 수사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적용한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외에 신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규명하는 게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비관적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미 기준 전 롯데물산 사장을 제외하고는 현직 대표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줄줄이 기각된데다 롯데그룹 2인자인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비자금 수사의 연결고리마저 잃었다. 새로운 단서나 정황 등을 파악해 혐의를 추가하지 않는 이상 한 번 기각된 구속영장을 재차 청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이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더라도 다시 법원에서 거절당하거나 구속영장 자체를 재차 청구하지 않으면 3개월간에 걸쳐 진행된 롯데그룹 경영비리 수사는 그를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다.
게다가 비자금 조성과 함께 최대 관심사로 꼽히던 제2롯데월드 인허가를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마저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롯데그룹 경영비리를 정조준한 검찰 수사가 ‘속 빈 강정’으로 끝날 수 있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비자금 조성은 검찰이 수사 초기부터 공들인 분야로 호텔롯데·롯데쇼핑·롯데자산개발·롯데케미칼 등 주요 계열회사의 부외 자금 존재를 파헤쳤지만 실체는 물론 총수 일가나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와의 연결 흔적도 찾지 못했다. 제2롯데월드 인허가 로비 의혹도 이명박 정부 유력 인사들의 비리 수사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정작 시행사인 롯데물산에 대한 압수수색도 이뤄지지 않았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학 동기이자 제2롯데월드 인허가를 진두지휘한 장경작(73) 전 호텔롯데 총괄사장을 7월 출국금지 조치한 것 외에 수사 과정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본인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7)씨와 서씨의 딸 신유미(33) 호텔롯데 고문 등에게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증여하는 과정에서 증여세를 탈세한 정황을 포착해 이들을 기소한 것이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안현덕·진동영기자 alwa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