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첫 주말을 맞아 전국 유명산에 가족 단위 등산객이 몰리는 대신 골프장과 인근 식당에 예약이 뚝 끊기는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일부 법 적용 당사자들은 오랜만에 주말을 가족과 보내는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2일 전국 유명산 관리소와 골프장 업계 등에 따르면 사흘간 이어지는 개천절 연휴 동안 서울 등 전국 유명산에는 주말 등산객이 몰려 북적였고 주요 골프장은 주말 예약손님을 다 채우지 못해 대조를 이뤘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주말 비 소식도 한몫했다.
연휴 첫날인 1일 비 소식에도 전국 유명산에는 아침 일찍부터 등산객들이 몰렸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가을산 단풍을 즐기기 위한 단체 관광객들과 가족 단위 등산객들로 유명산들은 입구부터 북적였다. 청계산·북한산·도봉산 등 서울 도심 산에는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고 설악산은 만경대 둘레길이 46년 만에 개방되면서 첫날에만 7,000여명이 다녀갔다.
골프장 부킹을 취소하고 등산으로 발길을 돌린 경우도 있었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자는 “몇 달 전부터 약속했던 골프장 모임을 취소하면서 차라리 돈이 안 드는 등산을 가기로 했다”며 “김영란법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모두가 부담 없이 등산하고 왔다. 당장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도심 복합쇼핑몰과 놀이공원에는 오전부터 사람들이 몰렸다. 비가 오는 가운데 서울광장, 양재시민의 숲 등 가을을 맞아 서울 등 전국 지자체에서 진행한 행사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 정부부처 공무원은 “오랜만에 주말에 약속이 비어 가족들과 함께 교외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성수기를 맞은 전국 골프장들은 예약객을 다 채우지 못해 울상을 지었다. 김영란법 시행 후 첫 주말을 맞은 골프장들은 대부분 예약과 이용객이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용인시의 한 회원제 골프장은 연휴 첫날인 1일 예약률이 평소의 95%, 2일에는 90%까지 떨어졌다. 명문 회원제로 통하는 경기 동부의 한 골프장은 비 예보에 따른 예약 취소까지 이어지면서 2일에는 예약률이 평소 주말의 70%가량에 그쳤다.
한 골프장 관계자는 “이 시기는 연중 극성수기로 주말은 거의 예외 없이 풀 예약이 돼야 하지만 이번 주에는 소위 황금 시간대인 오전에도 한두 팀씩 미달했다”면서 “비 예보에다 김영란법 시행의 파장이 겹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회원제 골프장 관계자는 “주말 회원들의 예약이 줄어들면 비회원 이용객으로 대체하기 위한 가격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인 결혼식과 돌잔치·장례식도 예정대로 치러졌지만 줄어든 화환과 손님들로 예전과 다른 한산한 풍경이 연출됐다. 초대를 한 사람이나 받은 사람 모두가 부담되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연락하거나 아예 알리지 않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청첩장에 등장한 “화환은 사양한다”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처음부터 문제 소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한 다른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주말마다 예식장·장례식장을 쫓아다녔지만 당사자가 오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도 있더라”며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고 현장에서 지인들과 축의금이나 부조금 액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당분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공연계에는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 5만원 미만의 관람권인 이른바 ‘김영란 티켓’이 등장했다. 오는 12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마리스 얀손스&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내한공연은 좌석 등급 및 객석별 가격 체계를 손봤다. 콘서트 2·3층 전체를 최하등급인 C석으로 조정하고 티켓 가격을 장당 2만5,000원으로 내렸다. 두 사람이 함께 관람한다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가격으로 티켓 값을 맞춘 셈이다. /박민영·송주희·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