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일(현지시간) 예상보다 빨리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협상 개시 카드를 뽑아들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치러진 지 100일(지난달 30일)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논의와 진전 없이 불확실성만 더해가는 상황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고조되기 시작한 가운데, 오는 10일 영국 의회 개회를 앞두고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브렉시트 협상이 시작되기 전까지 영국과 유럽연합(EU) 양측이 내놓는 입장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도 브렉시트 직후처럼 크게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메이 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3월 말까지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우리는 영국을 위한 올바른 거래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협상이 진행되는 “2년간 우리가 침묵을 지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이 총리는 앞서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브렉시트를 법적으로 공식화할 ‘대폐지법안’을 내년 봄에 제출해 “영국이 다시금 주권과 독립성을 가진 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첫 단계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폐지법안) 발효 즉시 영국은 독립주권국가가 된다”면서 “(영국) 근로자와 소비자·사업가들에게는 최대한의 안전을, 국제교역국 등에는 (경제적) 확실성과 안정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 7월13일 취임 이후 브렉시트 일정에 관해 최대한 말을 아껴온 그가 당초 예상보다 빨리 리스본조약 가동 카드를 뽑아든 데는 갈수록 거세지는 브렉시트 급진파의 압력이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 등 현지 언론들은 국민투표로부터 100일이 지났지만 브렉시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거의 밝혀지거나 정해진 바가 없는 가운데 메이 총리의 취임 초 ‘밀월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 적잖은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국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메이 총리가 일러야 2017년 후반에나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할 것이라고 예상해왔다. 더타임스는 메이 총리의 이번 발언이 유럽공동체법 즉시 철회를 요구하는 브렉시트 옹호론자를 잠재우는 동시에 ‘새로운 중도정치’ 건설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영국’이라는 자신의 구상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사위가 던져진 만큼 이제 전 세계는 영국 정부와 EU 간 협상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이 총리가 앞으로 EU와의 협상에서 이민 제한에 최우선순위를 두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거래를 달성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EU는 영국이 단일시장에 남기 위해서는 완전한 이동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험난한 협상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메이 총리의 발표를 두고 영국 정치권은 또다시 설전을 벌였다. EU탈퇴 운동을 주도했던 이안 던컨 스미스 전 고용연금장관은 “상당히 합리적인 계획”이라고 평하면서도 리스본 조약 50조가 3월보다 더 빨리 가동될 수도 있을 거라 전망했다. 반면 노동당 소속 존 애쉬워스 그림자내각 장관은 “매우 중요한 질문들에 몹시 부족한 대답들”이었다고 비난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